현각 스님 - LACMA 김현정 큐레이터 ‘불교 미술’ 대담 ...LA한국일보 09.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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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0.01.04 조회3,50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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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각 스님이 12일 라크마 빙 디어터에서 명상의 중요성에 관해 강연하고 있다. <이은호 기자>
12일 LA 카운티미술관(LACMA) 빙 디어터에서는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의 귀국 기념으로 ‘현각 스님과 함께 하는 한국불교와 미술에 관한 대화’가 열렸다. 이 행사는 김현정 라크마 한국관 큐레이터가 묻고 현각 스님이 답하는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불교미술에 관해서라기보다는 불교와 명상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1시간30분 동안 이어진 열띤 대담을 핵심만 추려 정리했다.
△김현정: 자서전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보면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해 불교 승려가 됐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현각 스님: 이 세상의 종교는 다 같다. 같은 목적을 갖고 있고 같은 일(doing the same job)을 하고 있다. 그 일은 진리를 찾는 일로써, 고통 불안 걱정 스트레스로 가득 찬 인생에서 자기 자신을 찾고, 또한 다른 사람의 인생을 도와주는 것이 모든 종교의 공통된 잡이다. 그 목적을 산의 정상이라고 보면, 360도 방향이 열려 있는 그 정상을 향해 동서남북 어느 쪽으로 올라가느냐가 다를 뿐이다.
△김: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고 어려운 길도 있을 텐데, 쉽고 빠른 길이 있나
▲현각: 명상은 헬리콥터를 타고 곧바로 정상에 오르는 것과 같다. 꼬불꼬불한 길이나 정지신호 없이 가는 단숨에 데려다 주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의 방법이 있다. 어떤 사람은 천천히 갈 것이고 헬리콥터가 어지러운 사람은 다른 방법으로 진리를 찾아갈 것이다.
△김: 진리가 무엇인가
▲현각: 여기 물을 한 잔 마셔 보라. 지금 물을 마신 너의 경험과 나의 경험은 같은 것이다.
△김: 각자 물의 맛을 다르게 느낄 수도 있지 않나
▲현각: 다르다고 하지 말고 그냥 마셔라. 그것이 포인트다. 물을 마시면 목마른 것이 해소되는 경험을 직접 성취하는 것이다. 불교는 이론을 이해하는 종교가 아니라 직접 경험하는 종교다. 물을 이해하지 말고 물을 마시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러지 않고 ‘물이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한국물인지, 미국물인지, 병물인지, 오염된 물인지를 따지면서.
△김: 모든 종교가 다 같은 일을 한다면서 왜 불교 승려가 됐나
▲현각: 부처의 이미지를 보면 그림이든 조각이든 나무에 새겨졌든 95% 이상이 언제나 명상하는 모습이다. 그것은 아무런 다른 매개물 없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의 앞에는 이론도 교육도 서류도 없고 곧바로 자신을 보고 있다. 예수님이 천국은 지금 네 안에 있다고 하신 말씀과 같은 것이다. 그 모습이 나를 이끌었다.
△김: 숭산 스님과 선(zen)은 어떻게 만났는가
▲현각: 하버드에서 숭산 스님 이야기를 듣고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내가 얼마나 똑똑하고 철학적 지식이 많은지 보여주기 위해 수 없는 독일 철학자들을 들먹이며 이야기했다. 그런데 스님은 단 세 마디 “후 아 유?”(Who Are You?)라고 물었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나는 폴입니다”(I’m Paul)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스님은 “그건 너의 엄마가 지어준 이름이지, 너는 누구냐?”라고 다시 물었다. 나는 당황하여 “모른다”고 했다. 스님은 “그걸 공부하라”고 했다. 그것은 아주 날카로운 칼을 가진 사무라이가 바로 내 목에 칼끝을 들이댄 것과 같은 경험이었다. 그 때 “아, 이 사람이 나의 스승이구나”하고 깨달았다.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당시 아테네에서는 미학, 철학, 수학 같은 것들이 최고의 학문이었는데 소크라테스는 그런 것 말고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것이다. 그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는 것이 명상이다.
△김: 당신은 계속 하는가
▲현각: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려워 보이지만 생각의 습관이 너무 강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일어나서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아보라. 그러다 갑자기 서면 방이 돌고 세상이 다 도는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방과 세상은 움직이지 않고 다 제자리에 있지 않은가.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이와 같다. 생각이 만드는 온갖 일루전을 놓아버리면 세상은 고요하다. 예수님도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명상할 때 나의 우주는 완벽하게 고요하고 명확하며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있다.
△김: 반가사유상의 이미지가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
▲현각: 우리는 과격한 이미지를 볼 때 혈압, 체온, 맥박이 달라진다. 심지어 예수님이 수난 당한 그림을 보아도 사람들은 슬픔이나 고통, 분노, 혹은 죄의식 등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부처의 이미지는 언제나 고요하고 편안하며 내면으로 기운 것이다. 한 예로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과 반가사유상의 이미지를 비교해 보자. 로뎅의 작품은 몸 전체가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모든 것을 생각하느라 어둡고 무겁고 심각하다. 그것은 지옥으로 가는 문과 같다. 생각은 고뇌이기 때문이다.
△김: 불교는 미래를 어떻게 보나
▲현각: 기독교의 메시야를 비롯해 많은 종교가 궁극적으로 구원자가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의 현재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래의 평화를 소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음날 눈을 뜨면 여전히 똑같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예수님은 “천국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셨다. 진짜 불교는 ‘지금 이 순간의 나’에서 생각을 커트하는 것이고, 그것이 미륵보살이다. 생각을 그만 두라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 만들어지는 일루전이 나쁘다는 것이다. 생각은 어디서 오는가, 누가 생각을 만드는 것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려면 더 많은 생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생각 이전의 완전한 상태, 명상으로 돌아가라고 가르치는 것이 불교다.
<정숙희 기자>
12일 LA 카운티미술관(LACMA) 빙 디어터에서는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의 귀국 기념으로 ‘현각 스님과 함께 하는 한국불교와 미술에 관한 대화’가 열렸다. 이 행사는 김현정 라크마 한국관 큐레이터가 묻고 현각 스님이 답하는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불교미술에 관해서라기보다는 불교와 명상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1시간30분 동안 이어진 열띤 대담을 핵심만 추려 정리했다.
△김현정: 자서전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보면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해 불교 승려가 됐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현각 스님: 이 세상의 종교는 다 같다. 같은 목적을 갖고 있고 같은 일(doing the same job)을 하고 있다. 그 일은 진리를 찾는 일로써, 고통 불안 걱정 스트레스로 가득 찬 인생에서 자기 자신을 찾고, 또한 다른 사람의 인생을 도와주는 것이 모든 종교의 공통된 잡이다. 그 목적을 산의 정상이라고 보면, 360도 방향이 열려 있는 그 정상을 향해 동서남북 어느 쪽으로 올라가느냐가 다를 뿐이다.
△김: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고 어려운 길도 있을 텐데, 쉽고 빠른 길이 있나
▲현각: 명상은 헬리콥터를 타고 곧바로 정상에 오르는 것과 같다. 꼬불꼬불한 길이나 정지신호 없이 가는 단숨에 데려다 주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의 방법이 있다. 어떤 사람은 천천히 갈 것이고 헬리콥터가 어지러운 사람은 다른 방법으로 진리를 찾아갈 것이다.
△김: 진리가 무엇인가
▲현각: 여기 물을 한 잔 마셔 보라. 지금 물을 마신 너의 경험과 나의 경험은 같은 것이다.
△김: 각자 물의 맛을 다르게 느낄 수도 있지 않나
▲현각: 다르다고 하지 말고 그냥 마셔라. 그것이 포인트다. 물을 마시면 목마른 것이 해소되는 경험을 직접 성취하는 것이다. 불교는 이론을 이해하는 종교가 아니라 직접 경험하는 종교다. 물을 이해하지 말고 물을 마시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러지 않고 ‘물이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한국물인지, 미국물인지, 병물인지, 오염된 물인지를 따지면서.
△김: 모든 종교가 다 같은 일을 한다면서 왜 불교 승려가 됐나
▲현각: 부처의 이미지를 보면 그림이든 조각이든 나무에 새겨졌든 95% 이상이 언제나 명상하는 모습이다. 그것은 아무런 다른 매개물 없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의 앞에는 이론도 교육도 서류도 없고 곧바로 자신을 보고 있다. 예수님이 천국은 지금 네 안에 있다고 하신 말씀과 같은 것이다. 그 모습이 나를 이끌었다.
△김: 숭산 스님과 선(zen)은 어떻게 만났는가
▲현각: 하버드에서 숭산 스님 이야기를 듣고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내가 얼마나 똑똑하고 철학적 지식이 많은지 보여주기 위해 수 없는 독일 철학자들을 들먹이며 이야기했다. 그런데 스님은 단 세 마디 “후 아 유?”(Who Are You?)라고 물었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나는 폴입니다”(I’m Paul)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스님은 “그건 너의 엄마가 지어준 이름이지, 너는 누구냐?”라고 다시 물었다. 나는 당황하여 “모른다”고 했다. 스님은 “그걸 공부하라”고 했다. 그것은 아주 날카로운 칼을 가진 사무라이가 바로 내 목에 칼끝을 들이댄 것과 같은 경험이었다. 그 때 “아, 이 사람이 나의 스승이구나”하고 깨달았다.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당시 아테네에서는 미학, 철학, 수학 같은 것들이 최고의 학문이었는데 소크라테스는 그런 것 말고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것이다. 그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는 것이 명상이다.
△김: 당신은 계속 하는가
▲현각: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려워 보이지만 생각의 습관이 너무 강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일어나서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아보라. 그러다 갑자기 서면 방이 돌고 세상이 다 도는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방과 세상은 움직이지 않고 다 제자리에 있지 않은가.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이와 같다. 생각이 만드는 온갖 일루전을 놓아버리면 세상은 고요하다. 예수님도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명상할 때 나의 우주는 완벽하게 고요하고 명확하며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있다.
△김: 반가사유상의 이미지가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
▲현각: 우리는 과격한 이미지를 볼 때 혈압, 체온, 맥박이 달라진다. 심지어 예수님이 수난 당한 그림을 보아도 사람들은 슬픔이나 고통, 분노, 혹은 죄의식 등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부처의 이미지는 언제나 고요하고 편안하며 내면으로 기운 것이다. 한 예로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과 반가사유상의 이미지를 비교해 보자. 로뎅의 작품은 몸 전체가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모든 것을 생각하느라 어둡고 무겁고 심각하다. 그것은 지옥으로 가는 문과 같다. 생각은 고뇌이기 때문이다.
△김: 불교는 미래를 어떻게 보나
▲현각: 기독교의 메시야를 비롯해 많은 종교가 궁극적으로 구원자가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의 현재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래의 평화를 소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음날 눈을 뜨면 여전히 똑같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예수님은 “천국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셨다. 진짜 불교는 ‘지금 이 순간의 나’에서 생각을 커트하는 것이고, 그것이 미륵보살이다. 생각을 그만 두라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 만들어지는 일루전이 나쁘다는 것이다. 생각은 어디서 오는가, 누가 생각을 만드는 것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려면 더 많은 생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생각 이전의 완전한 상태, 명상으로 돌아가라고 가르치는 것이 불교다.
<정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