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불광선원 주지 휘광 스님…제대로 된 법당 없는 뉴욕서 ‘야외법석’ 마련해 3년 연속 법문 ....뉴욕중앙일보 10.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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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0.03.22 조회3,06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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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뉴욕불광선원에서 열린 수계법회 때 뉴욕을 찾은 법정 스님(오른쪽)과 함께 한 휘광 스님.
스님, 이 무슨 변고 이십니까?
이역만리 미국에서 스님의 열반 소식을 듣는 순간 지난 가을 스님을 직접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저에겐 통한의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스님, 무엇이 그리 빨리 사바세계를 떠나시게 했는지요? 임시로 법당에 마련한 분향소에 천수물 올리고 향불 사르며 스님의 열반길에 합장 배례 올리나이다.
그 옛날 봉은사 다래헌에서 최초로 집필하신 수필집 ‘영혼의 모음’은 제게 수행자로서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그 후 10여년이 지난 어느 날 송광사 구산 조실스님의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읽으시던 스님을 먼발치로 바라만 보았지요.
뒷날 이곳 뉴욕에 와서 불광선원을 창립하고, 뉴욕사원연합회를 조직하여 스님을 초청하기 위해 길상사 파리분원으로 직접 찾아가 친견했을 때, 흔쾌히 법회참석을 허락해 주시던 그 모습.
그 인연의 이어짐이 불광선원의 3년 연속 법회였습니다. 뉴저지 최대규모의 연회장에서 이루어진 법회 때에는 예상했던 인원의 몇 배가 넘는 불자들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지요.
그러나 번잡함을 싫어하시던 스님의 뜻대로 이듬해에는 연회장이 아닌 불광선원 천막에서 수계대법회를 열어 뉴욕·뉴저지 많은 불자님들에게 불명 받을 기회를 주셨습니다.
당시 법당이 좁아 야외 주차장에 천막을 치고 스님을 모실 수 밖에 없었던 열악한 환경에도 “이런 천막법회가 오히려 무소유 실천행에 더 없이 좋은 것이야” 라고 싱그러운 미소를 띄며 말씀해 주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선연히 남아있습니다.
여느 큰 스님처럼 법상에 오르지 않으시고 설법탁자 앞에 서서 법문을 늘 하셨지요.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 때 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이처럼 스님의 법문은 언제나 차분하여 우리 가슴 속에 따뜻함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이곳 뉴욕에 머무르실 때 마다 보스턴 인근에 위치한 월든 호수를 즐겨 찾으셨습니다.
스님과 너무나도 닮은 그 호숫가에서 세속을 떠나 오두막을 짓고 일생을 보낸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사상과 철학을 얘기하시며, “내 사상의 근원적 모태는 헨리 소로우와 마하트마 간디의 정신에서 출발한 것이야” 라고 귀띔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스님의 자연회귀 사상과 비폭력 정신은 소로우와 간디, 두 사람의 현인에게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요.
스님,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통나무 집 앞에서 이미 150여년전에 앞서간 그분과 다정스럽게 대화 하시던 그 육성음이 지금도 제게 이렇게 생생한데 벌써 열반의 길로 떠나셨다니 이 아쉬운 마음을 어디에 하소연 할 수 있겠습니까?
죽음은 생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생의 시작이며 철저하게 온 몸으로 살고 온 몸으로 죽어야 참다운 생사일여의 경지를 터득할 수 있다는 스님의 말씀을 나름대로 경험했다고 했는데, 스님의 입적 소식엔 그만 회오의 아픔이 멈춰지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스님은 쉽게 다가설 수 없고 신도들과의 개인적 접견을 꺼린다고 하지만, 뉴욕·뉴저지 해외불자들에겐 그 얘기가 무색하기만 했습니다.
법당 안에서 소리쳐 뛰어다니는 어린 새싹들을 보듬어 주시고, 함께 사진 찍는 것도 기꺼이 허락해주시고, 당신 저서에 친필 사인도 해 주시면서 한없는 자비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당시 한국의 신도들은 스님의 이런 행보에 많이 놀랐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사찰에 어려움이 닥쳐 고뇌하고 있는 제게 용기를 잃지 말고 끊임없이 한 길로 정진하라며 법구경의 귀중한 말씀을 친필로 써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 글귀는 지금까지 마음속의 좌우명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스님을 글 잘 쓰는 문인으로 생각하지만, 가까이서 지켜 본 제게는 철저한 자기 절제의 수행자이셨습니다. 관념적이고 맹목적인 참선 수행을 거부하시고 대중 선방 울타리를 과감히 벗어나 홀로 산중에서 각골정진 하셨던 스님,
‘생야 칠편 부운기(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사야일편 부운멸(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이 같은 생사 진리를 몸소 우리들에게 깨우쳐 주기 위해 서둘러 열반에 드셨는지요. 스님께서는 떠나기 직전 그동안 언어로써 공해만 남겼으니 당신의 저술 모두 절판하고, 입던 옷 그대로 강원도 오두막에서 늘 정진하셨던 그 평상과 함께 다비하라고 유언하셨다지요.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무소유의 삶을 저희들께 직접 보여주신 그 고귀한 뜻 깊이 새기며 수행정진 하겠습니다.
스님, 다비가 진행되어 불길이 솟아 오르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님의 일찍가심을 슬퍼하며 아쉬워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진정한 대종사 스님이시여, 부디 고이 열반에 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