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 여래사에서 정진하는 푸른 눈의 해종 스님 ...SF한국일보 10.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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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0.03.22 조회3,09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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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의심에 사로잡히다 : 새크라멘토 여래사에 해종 스님(사진)이 있다. 지난 해부터 여래사에 머문다. 스님의 하루 일과를 물었다. 여섯 시간의 참선. 나머지는 그 마음을 지키며 일상을 돌보는 일. 대체 여섯 시간씩 앉아서 무엇을 하느냐 또 물었다. 의심을 일으킨다고 했다. ‘나는 무엇인가? 몸뚱이인가 마음인가? 심장이 멎으면 마음도 죽는가? 마음이 죽으면 심장이 멎는가?’ 이와 같은 의심이다. 의심을 없애려고 일으킨단다. 다른 생각을 없애기 위해 그 의심마저 없애기 위해서라고. 생각이 일어나는 그 밑바닥에 있는 마음을 보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마음이 붓다의 마음이란다. 누구나 부처로 태어났기에 의심이라는 도구로 순수의 땅인 마음을 드러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한국불교 대스승 구산 스님을 만나다 : 해종스님이 처음 한국 불교와 만나게 된 때는 1982년이다. 그 때 현대 한국의 고승이신 송광사의 구산스님께서 미주 순회를 하고 계셨다. 카멜에서는 열흘간 젊은 승려들과 24시간 참선 수행을 하는 용맹정진을 하셨고, L.A.에서는 법회와 나흘간의 단기 출가를 진행하셨다. 해종스님은 영문 잡지에서 구산스님의 설법을 이미 접했기에, LA 수련회에 참가했다. 출가를 결심했다. 그런 그에게 구산스님이 물었다. “출가를 결심했으면 명상 수행을 하고 있을 텐데, 무슨 수련을 하는가?”
해종스님은 호흡을 세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감정을 바라본다고 했다. “그대 숨이 멎고 나면 다음엔 무엇을 셀 것인가?” 해종스님은 ‘nothing’ 이라고 말했고, 구산 노스님은 “No.”라고 일렀다. 그 다음 해종스님에게 ‘그대 몸뚱이의 주인이 무엇인가?’ 라는 의심을 건네주었다.
해종스님은 곧 한국 송광사로 갔다. 스님이 되기 위한 행자 수련을 시작했다. 아쉽게도 이듬 해 구산 스님께서 입적하셨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지금까지 초심을 심어주신 어른의 가르침을 품고 있다고 했다. 해종이란 법명도 구산 스님께 받은 것이다.
◆중국 웨이 리 스님 문하에서 화두선을 수련하다 : 송광사에서의 수련은 건강이 악화되어 중단하게 되었다. 미국으로 와 건강을 회복한 후 일본으로 갔다. 87년까지 4년 동안 일본에서 수련을 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수행의 끈은 놓지 않았다. 해종스님은 93년 홍콩에서 수계를 받고, 중국 스승인 웨이 리 스님을 만나 보다 깊은 수행에 전념 했다. 웨이 리 스님의 가르침은 구산 스님의 가르침과 같았다. 중국에서 시작된 간화선(화두 선)이 한국과 일본에 전해지고, 지금은 오직 한국 스님들과 중국 스님들에 의해서만 본질적 맥이 이어진다고 스님은 말한다. 한 맥이기에 종단이나 문중의 틀을 넘어 공부 자리를 찾아왔다고 했다. 지금 스님은 한국 불교 조계종 안에서 정진을 이어가고 있다. 조계종이 지키는 간화선을 그 모습 그대로 붙들고 수행한다.
불안 스트레스 두려움 등이 일어 본래의 깨끗한 우리의 본성을 덮어버렸다. 화두라는 빗자루를 들어 달을 가리고 있는 구름을 쓸어 내리는 것, 그것이 간화선이다. 필자가 미국에 와서 더 많이 접한 명상 법은 호흡에 마음을 모으고, 현재의 떠오르는 감정들을 마주하자는 주장이었다. 그 불안을 바로 보고 내려 놓자고 한다. 이렇게 알기 쉬운 방법을 왜 한국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투정이 생기기도 했다.
해종스님의 지적이다. 생과 사가 없다고 했는데, 그럼 호흡이 사라지면 무엇에 의지할 것이냐는 반문이다. 물리적 작용 밑에 놓인 의식의 안쪽을 드러내자고 했다. 역시 모를 소리다. 그러나 예전 한국에서 보았던 스님들의 선기(禪氣)가 느껴졌다. 풀 먹인 베옷 깃의 날카로운 칼칼함이다. ▷새크라멘토 여래사: 전화(916) 682-8658, 주소 7870 Bradshaw Rd.Sacramento, CA 95829 <글/사진-안희경/번역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