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화 12호] 청소년 미국 문화연수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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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민호 작성일2012.07.10 조회3,53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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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동부의 조금 쌀쌀한 이른 아침, 숙소에서 나와 오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차를 타려고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47명의 ‘한미청소년불교문화연수단’을 태우고 가야 할 차량은 고작 작은 택시 한 대에 불과하다는 답이다. 16일 동안 머리 속에 아침저녁으로 47명이란 숫자를 넣고 다녔더니 한국에 돌아온 며칠 뒤 꾸었던 악몽의 한 부분이다. 14박 16일간 옥천암, 조계사, 국제선센터 친구들과 미국 동부의 뉴욕, 보스턴, 매사추세츠, 워싱턴과 서부 샌프란시스코, LA 등지로 문화연수를 다녀왔다.
정범스님은 10년 전 미 동부의 아이들 5명과 함께 플로리다로 자가용 여행을 한 것을 계기로 이와 같은 큰 프로젝트를 준비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범스님은 40여 명의 안전을 많이 염려하는 눈치셨다. 언젠가 호기심만으로 떠났던 미국에서의 1년 반 생활은 내 삶의 목표를 세우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고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모티브로 충분했다.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아이들에게 보여줄 곳도 많았고, 경험하게 해줄 것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한 장소에서 충분히 즐기고 사유할 시간이 적었던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여행은 미국에서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정진하고 계신 현지 한국 스님들께서 반겨주시고 여름 여행에서 만난 미국 친구들까지 합세하여 보내는 시간이었던지라 참가 학생들에겐 특별한 여행이 아닐 수 없었다.
여행 중 아이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쇼핑, 스스로 하는 자유여행, 미국음식 먹기 등이었다. 나는 청소년들과의 5년여 경험을 통해 청소년 시절에 많이 보고 듣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사회성을 기르는 것이라는 점을 배웠다. 단체생활을 경험하기 어려운 한국의 아이들에게 이번 프로그램은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예를 들면 종종 과도한 학업, 인터넷, 스마트폰 등은 아이들로부터 친구들과의 시간을 뺏는다. 물론 그런 것들이 기술을 이용한 다른 방법의 소셜 네트워킹이라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람이 서로 눈빛을 보며 그 주변 분위기를 느끼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꼭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역시나 거의 대부분의 참가 청소년들이 이와 같은 단체생활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나 컨셉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것을 보완하기 위해 철저하게 팀별로 활동했고 그러자 시간이 지날수록 팀원끼리 뭉치고 서로 돕는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슬펐던 일은 아이들에게 ‘무서운 인상’을 끊임없이 주어야 했던 일이다. 나의 지론은 서로가 믿음을 바탕으로 자율과 책임을 함께 하는 것이지만 경험이 부족한 47명의 대군을 이끌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한 법우가 ‘스님, 스님과 저희는 학생과 학교 선생님 같아요’라는 말을 했을 땐 가슴이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아이들의 영적인 멘토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아침 예불에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이산혜연선사발원문에는 ‘아이로써 출가하여 귀와 눈이 총명하고 말과 뜻이 진실하여 세상일에 물 안 들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나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말 속에 담긴 의미에 깊이 빠져들며 발원하곤 한다. 그리고 청소년기에 스님들과 이런 여행길에 나선 우리 아이들을 보면 전생 어느 생인가 나처럼 발원하여 어린 나이에 불교와 인연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와 같은 인연을 잘 이어 주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몫이 아니겠는가 새삼 생각해 본다. 글_상인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