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와 불법홍포 매진해온 묘지스님 원적(불교신문 11/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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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1.11.07 조회2,95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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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조계사는 홈페이지에 묘지스님의 원적을 알리고 애도글과 추도식 일정 등을 올렸다. |
묘지스님(맨하탄 은 숭산행원대종사가 1973년 설립한 뉴욕 조계사를 맨하탄으로 이전해 세계평화와 불법홍포에 매진해왔다. 1995년 뉴욕 조계사 주지로 취임한 이후 2004년 도량을 현재 자리로 옮겼다. ‘조계사 한국불교재단’을 설립해 비영리단체로 정식 등록하고 한인 2세 포교를 통한 청년 불자 양성과 현지인 포교에 힘써왔다. 뉴욕 국제불교협회의 구심점 역할도 해왔다.
부처님 말씀을 따라 무소유를 실천해 온 스님은 자신의 주머니에 동전 한 닢 넣지 않을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 생전 스님은 독립적인 거처조차 두지 않았다. 현지 불자들에 따르면 방은 모두 신도와 방문객을 위한 요사채로 활용하고 모두가 잠든 후 법당 한 켠에서 좌복을 깔고 잠을 청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사무실 한 구석, 화장실 앞, 불단 아래도 마다하지 않았다.
현재 빈소에는 스님의 원적을 애도하는 스님들과 불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30년 지기인 계룡 무상사 조실 대봉스님은 스님의 원적 소식을 듣자마자 뉴욕 분향소로 조문을 왔다. 대봉스님은 이 자리에서 “우리는 숭산스님을 함께 모시며 한국불교를 세계 속에 심기 위해 노력했다”며 “대단한 추진력 하나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죽음에 임하는 자세로 삶을 꾸려왔고 삶을 누리듯 적멸에 들었다”고 말했다.
재가자들도 스님의 가르침과 열정을 되새기기 위해 추모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조계사 신도인 마이클 팬타리어니(75, 변호사)씨는 “변호사로 살아온 수 십 년 동안 내 안에 남아있던 의심을 걷어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며 “때로 강하게 경책도 하셨지만 모두 공부를 익혀주기 위함이었다”고 말했다. 또 “스님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큰 행운이었다”고 밝혔다.
이장욱(34)씨는 “스님은 몸을 불사르며 불사를 하셨다”며 “법회를 볼 장소가 없었던 타 불교국가 스님들에게도 공간을 내 줄 정도로 보살행을 실천하셨다”고 떠올렸다.
원적 소식을 들은 해외사찰에서도 편지를 보내왔다. 홍콩 수봉사 주지 대관스님은 편지글에서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준데 대한 감사 인사와 용맹정진의 정신을 잊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대관스님은 “어디를 가든 스님의 힘차고 선명한 서원은 빛날 것”이라며 “함께 수행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들은 스님의 미소와 가르침, 열정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묘지스님이 우리들에게 전한 말은 깊은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산은 푸르고 물은 흐르고 개는 짖고 설탕은 달다.”
“한 방울의 물이 온 우주를 머금어요. 그대의 한 마음이 온 우주를 바꿉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나는 수행해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해야지요.”
뉴욕 조계사는 지상 5층 규모로, 대웅전 관음전 지장전을 비롯해 선원과 도서관, 문화교실 센터 등이 마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