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불교학교 미국연수 <3>(불교신문 1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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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2.02.26 조회2,82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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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인디언 박물관’은 건축물부터 인테리어 모든 것이 예술작품이었다. |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워싱턴 DC는 포토맥강을 기점으로 북동쪽은 메릴랜드 주, 남서쪽은 버지니아 주로 나누어지는데, 미국 초대대통령 조지워싱턴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세계 최고 169m의 워싱턴기념탑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유유히 흐르는 포토맥 강 곁에 우뚝 선 링컨기념관, 동쪽으로는 국회의사당 및 국회도서관, 그 곁으로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과 북으로는 백악관, 남서쪽 강 건너에는 버지니아 주가 알링턴 국립묘지와 9.11사건 공격 대상으로 이목을 끌은 바 있는 미 국방성(펜타곤)과 미국 정부기관과 각국 대사관들이 집중돼 있는 도시. 워싱턴 DC.
콜럼버스가 처음 대륙을 발견한 후 무수한 아메리칸-인디안들의 오랜 삶과 문화의 희생과 눈물을 짓밟고 일어난 이래, ‘자유란 이름의 또 다른 감옥’을 방불케 하는 강력한 법치주의 국가로 미국 시민권자가 위험에 처했다는 신고를 받으면 이역만리까지도 헬리콥터를 띄우는 극진함과 동시에 투철한 역사교육을 통해 유난한 국민들의 특별한 자긍심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나라.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찬탄만큼이나 성조기를 불태우며 반미를 부르짖는 수많은 반세계화.평화주의자들의 도마 위에 쉴 새 없이 오르내리지만, 다민족 다문화인들이 50개주에 복잡 미묘하게 녹아든 곳, 오늘의 미합중국을 탄생시키기까지 저 포토맥강은 늘 저렇게 말없이 유유히 흘러왔을 것이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비롯해
한국전쟁참전 기념공원 순례
죠지타운 ‘불교학 강의’ 참관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의 반사벽(Reflecting Wall)에 새겨진 젊은 용사들의 이름과 얼굴을 향해 합장하고 섰다. 도반 스님들의 청아한 <법성게>와 <반야심경> 음성이 울려 퍼지는 겨울하늘, “Freedom is not free!”를 가슴에 새기며 돌아 나오는 길, 백악관 앞에서 정부의 전쟁참전 반대와 평화를 부르짖으며 천막농성 10여 년째라던 미국인 청년의 덥수룩한 수염 그 너머 투명하게 빛나던 눈동자가 겹쳐온다.
멀리 게티스버그 연설문 “By the people, Of the people, For the people”을 새겨둔 노예해방과 민주주의의 아버지 링컨대통령의 석상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자, 이제 링컨의 후예들을 만날 시간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졸업하였다는 명문 죠지타운 대학을 견학하며 우연히 캠퍼스에서 마주친 한 여학생의 배려로, ‘불교학 강의’를 참관하며 학생들과 스님들 간 그룹별 토의시간을 가졌다.
카톨릭 재단인 학교에서 대부분 기독교인인 이 젊은 청년들이 왜 굳이 “불교학 강의”를 선택해 공부하고 있는 것일까?
앉자마자 쏟아지는 질문들. 한국불교와 미국불교의 다른 점, 승가공동체의 하루일과, 스님들은 경제적인 부분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왜 수많은 길 중에 불교, 그 중에서도 출가수행자인 스님의 길을 택하게 되셨는지, 마음의 평안을 찾고자 명상에 관심을 갖다 불교를 만나게 되었는데, 스님은 명상을 통해 어떻게 삶이 변화되었는지, 그동안 워싱턴DC에서 여러 불교사원과 다른 종교센터들, 미국문화를 체험하며 무엇을 느꼈는지 등등, 청년들답게 조직보다는 주로 종교를 끌어가는 인간 자체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과연 국제불교학교에서 지난 1년간 익힌 공부의 효력을 마음껏 발휘한 스님들, 토의가 끝난 뒤 강의실을 나서는 얼굴이 모두 빨갛게 상기되어 있다.
명상이 불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스님들이 미국까지 날아온 진정한 이유는 너희를 꼭 불자로 만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행복으로 가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길을 보여주고 함께 고민하며 나누기 위한 걸음이라는 스님들의 설명을 듣고 학생들이 무척 밝은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며, 포교란 결코 내 것을 믿으라고만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님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캠퍼스 내에 명상센터를 따로 두었을 만큼 열린 종교관을 가진 조지타운 대학의 아름다운 고딕양식 건물들을 뒤로 아쉬운 걸음을 내딛으며, 조금이라도 나와 다른 이를 만나면 먼저 경계부터 짓고 보는 한국인들의 배타적인 성향과는 달리, 어린 시절부터 오히려 그 ‘다름’을 통해 성숙해지는 법부터 배운다는 것, 얼마나 미래지향적인 교육법인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