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으로 간 봉암사 수좌의 글 법문 (법보신문 12/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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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2.01.25 조회2,84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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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무엇인가에 종속되어 있으면 괴로운 일이고 좋아서 하는 일이면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즉 고용인으로서 보수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은 스스로를 고용인으로 종속시켜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은 고용인이라 할지라도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스스로 자유인이 되어가는 삶이 될 것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현대인들이 늘 고민하는 삶의 과제 중 하나다. 옛적 중국의 임제 선사가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즉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는 곳마다 참되게 하라고 일러주었듯이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즐기면 일의 주인이 되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나, 머리로 이해하면서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내 주변에서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가 그대로 실천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보다 가슴 깊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
‘구도자의 발자취’는 지금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그것도 미국에서 이름난 교육의 도시이자 물가가 높기로 유명한 보스턴에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이미 20년 전 사찰을 창건하고 연착륙시키는데 성공한 스님이 들려주는 현대인들의 마음병고 치료 이야기다.
저자 도범<사진> 스님이 “한국에서는 선방으로 떠돌다가 미국에 건너온 지 20년이요 지금은 노(老)스님도 노(NO)스님도 아닌 헌 스님으로 살고 있다. 아직까지 돈 한 푼 벌어보지 못하고 시주의 은혜로 생활하다보니 도움을 받을 때마다 고마움의 편지를 올렸다”고 밝혔듯, 이 책은 저자가 인연 닿은 대중들에게 보낸 편지글 묶음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편지 글과는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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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살아가며 현대인들의 삶을 온전히 지켜본 현자가 자신만의 소통방식으로 세간 인연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그래서 55편의 편지와 44편의 수상록은 마치 아흔아홉 제각각 현실에 맞춘 대기설법처럼 읽힌다.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지 않으면서도 오랜 수행에서 얻은 지혜를 상대방의 현실에 맞춰 풀어내고 전달함으로써 일상에 찌든 삶에 여유를 찾아주고 있다.
“산중에 홀로 살다보니 귀가 밝아지는지 작은 풀벌레소리며 나뭇잎 하나까지도 귀 바퀴에서 입체음악으로 들립니다. 호젓한 산중 침묵으로 일관하며 귀만 열어두니 움직임마다 생명의 소리요, 소리마다 법문입니다. 어젯밤은 까닭도 없이 잠이 오지 않기에 늦게까지 앉아 있으니 조각달빛 아심이 문살에 배어들더니 마침내 밤바람이 밖으로 불러내더이다.”
그리고 이처럼 때론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저자 도범 스님은 1967년 해인사에서 동곡당 일타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후 해인사선원을 시작으로 봉암사, 망월사, 극락암, 도솔암 등에서 수행하는가 하면 해인사 율원의 첫 번째 졸업생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님은 해외포교에 뜻을 두고 1992년 미국 보스턴에 지혜의 도량 문수사를, 2년 후에는 마이애미에 보현사를 각각 창건해 지금까지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포교에 전념하고 있다.
‘봉암사에서 보스턴까지’를 부제로 붙인 이 책에서 도범 스님의 지나온 발자취를 함께 거닐며 출가 수행자들의 일상과 세간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지난한 삶을 함께 볼 수 있고, 더불어 현자가 전하는 아흔아홉 삶의 지혜도 얻을 수 있다. 1만2000원.
심정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