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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불교학교 미국연수 <7·끝>(불교신문 1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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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2.04.13 조회2,9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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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나 마하리쉬 아쉬람의 선원에서 마하리쉬 동상 앞 미국인 수행자와 함께한 국제불교학교 스님들.
어느덧 본래 온 곳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This 是 이것”이 무엇인지 찾아 나선 길, 긴 꿈에서 깨어나니 가슴 한켠이 묵지근해진다.

2004년 당시 이미 미국 내 불교도가 150만 명, 지금 미국 내에서 가장 주목할 만큼 급속도로 퍼져가는 종교는 불교라는 조사결과가 있었다. 하지만 일부 한국교회들의 공격적인 활동 탓에 막상 미국인들은 ‘한국은 기독교국’인 줄로만 알았는데,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한국 비구니스님들의 대거 등장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대대로 불자집안이었던 한국교민들이 이민 후 개종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낯선 땅에 뚝 떨어진 그들에게 공항에서부터 사회적응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연결해 주는 곳이 교회인 반면, 적절한 한국사찰은 찾아내기가 쉽지 않은 때문이라 한다.

첫 인사가 “어느 교회 다니세요?”인 만큼, 대형마트나 식당입구 어디든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앞 다투어 놓여있던 한국교회들의 홍보물 경쟁, 길에서 만나 스님들과 반갑게 대화를 나누던 아이들을 획 잡아채 가 버리며 “사탄” 운운하는 한국 기독교인 어머니들의 현실을 경청하는 동안, 지금 ‘한국불교 세계화’를 부르짖는 우리가 우선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돌이켜 보게 된다.

가슴 울리는 깊은 수행과

인권보호 전쟁종식 통해

대안종교로 떠오르는 불교

“대단한 설교나 법문을 바라서라기보다는 그저 힘겨운 이민생활을 다독여주고 내게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는 스님의 한 마디, 따스한 눈빛 하나가 그리워 왕따를 당할지언정 절을 찾는다”던 미국 내 청년 불자들의 고백을 들으며 가슴이 짠하다.

이번 연수 중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한국불교만의 특징이 무엇이냐”와 “한국불교는 어떻게 시대 대중들의 고통을 어루만져주고 있는가”였다.  이 이역만리까지 와서 아무리 영어가 유창해도 어설픈 말장난이나 큰스님 흉내가 아닌 진실한 정진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법으로써 행할 때 지속적인 울림이 있다.

보시(布施) 개념이 미약한 미국인들 속에서 모기지(mortgage, 부동산담보대출, 교민들은 이를 ‘모가지’로 희화해 부르고 있었음)에 연명해 한 달 한 달 빠듯이 보내야 하는 현실 속에서도, 가슴을 울리는 깊은 수행에 환경운동, 전쟁종식, 인권보호 등 진실한 행이 겸비된 철저히 ‘미국화’ 된 불교는 서구인들에게 불교가 새로운 대안의 종교로 퍼져나가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태생부터 Melting-Pot(다양한 문화들이 한데 녹아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 가는 용광로)인 미국인들에겐 아집을 벗어나지 못한 채 접근하는 포교는 Sharing(나눔)이 아닌 자칫 저 숱한 전쟁들의 이면에 웅크린 ‘강요된 Propagation(전파, 번식)’으로 둔갑해 버릴 수 있다.

<Without Buddha, I could not be a christian.(부처님이 안 계셨다면 나는 참 기독교인이 될 수 없었다)>라는 저서를 쓸 만큼 불교 특히 참선수행을 통해 진정한 내 안의 신성(神性, Divine nature)과의 만남을 체험하며 사시는 유니언신학대학의 폴 니터 교수님의 투명하던 미소와 일체의 형상과 격식을 배제하고 각자의 자리에 조용히 앉아 명상에 잠긴 모습이 한국의 어느 선방인 듯 착각케 하던 퀘이커교 미팅에서의 감흥까지.

과거의 아메리칸 드림은 경제적(외적) 풍요를 향한 꿈이었다면, 미래의 그것은 영성적(내적) 성숙을 향한 꿈이 될 것임을, 바야흐로 불교가 도착한지 겨우 100년도 채 안 된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가장 미국적이라 할 만한 자유롭고 실험적인 종교 간 소통을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끌어내고 있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저 신라의 원효스님을 이어 끝없이 나누고 나누던 혼동의 현실을 기꺼이 껴안고 너울너울 화엄무애(華嚴無碍)의 춤을 출 ‘이 시대의 화쟁(和諍)’으로 되살아 오르는 순간이진 않을까?

우린 이 ‘쌍방소통의 묘미’를 결코 가볍게 보아 넘겨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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