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화 30호]워싱턴 보림사, 선사의 역설: 수불스님의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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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그루 작성일2013.09.06 조회2,86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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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주지이자 안국선원 창립 선원장이신 수불스님이 미국을 방문해 워싱턴DC에서 개최된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기념행사에 불교계 대표로 참석했다. 빡빡한 스케줄 사이에 수불스님은 우리 불자들을 만나고자 공식 만찬을 취소하고 26일 금요일 오후 워싱턴 보림사를 방문했다. 사흘 전에 수불스님의 방문을 통보받은 보림사는 귀한 손님을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방한 중이던 주지 경암스님도 수불스님의 방문 소식을 듣고 급히 복귀하였다. 간화선 현대화의 선구자로서 한국 최고의 참선수행 도량을 일으키신 수불스님의 보림사 방문에 가장 흥이 난 것은 보림사 참선반이었다. 지난 7년간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 정진하면서도 항상 가르침에 목이 말랐었다. 그래서 손님맞이를 위한 청소부터 공양 준비까지 모두 참선반에서 주도하였다.
수불스님의 보림사 방문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스님을 모신 차량이 경내에 진입하고 이내 스님이 하차하자 모든 신도이 합장으로 환영하는 가운데 반가운 미소로 영접하는 주지스님과 수불스님은 뜨거운 악수를 교환하였다. 수불스님은 “밥 얻어먹으러 왔는데 이렇게 환영해 줘 고맙다”고 답례했다. 주지스님과 차담을 나누다 정성껏 준비한 공양을 드신 후 수불스님 특별법회가 열렸다. 처음 만나는 불자들에게 많이 내려주시는 “종교를 믿는 이유와 목적”에 관한 법문과 함께 보림사를 방문하신 특별한 소회를 말씀하셨다. 법문이 끝나자 여러 진지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법회를 마치고 참선반의 특별요청으로 간담회가 열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법당에서 있었던 질의응답 시간이 재현되었다. 워싱턴 한국 불교계와 처음 만나는 스님에게 사람들은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질문 하나: 스님...미국 오기 전에 스님께 직접 법명도 받은 불자입니다. 지금도 인터넷으로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참선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보림사에서도 오랫동안 참선반 활동하고 있고요..., 참선반을 좀 더 잘해보고 싶은데요...
수불스님: 참선, 참선 떠들지 마라. 참선한다고 상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어 같은 절에서 참선파와 비참선파로 나뉘어 신도들 사이에 갈등을 유발하는 것을 자주 봤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공부도 되지 않는다. 참선한 사람이 양보하여 참선의 ‘참’ 자도 꺼내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진정한 참선이다. 열심히 앞장서서 이 절의 스님을 도와라. 상을 내지 말고 더 많은 사람이 공부할 수 있도록 묵묵히 절을 돕는 것이 진정한 참선이다.
질문 둘: 말씀만 듣던 큰 스님께서 이렇게 직접 찾아와 주시니 저희는 복권에 당첨된 것만 같습니다. 지난 수년간 참선공부를 하고 있는데, 스님께 직접 화두를 받고 싶습니다.
수불스님: 눈을 못 떴는데 화두를 들면 뭐하나? 자기한테 맞는 제대로 된 화두를 만날 때까지 봉사하며 기다려라. 의심을 억지로 일으키는 것은 진짜 의심이 아니다. 이뭣고 하라고 화두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에게 맞지 않는 잘못된 화두는 몸 망치고 인생도 망칠 수 있다. 이뭣고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참’ 자도 꺼내지 말라는 가르침. 화두 들지 말라는 가르침. 선사가 아니면 내릴 수 없는 이 역설적 가르침. 이로써 이날 모인 워싱턴 보림사 식구들은 또다시 역설적으로 참선과 훨씬 가까워졌다. 불법을 역설로 가르치는 힘, 그 법력을 체험할 수 있었던 금쪽같은 시간. 3박4일 공식 일정 가운데 짬을 내어 마련한 비공식 일정이었지만 워싱턴 불자들에게는 복권 당첨보다 더 소중한 큰 선물이었다.
글/사진: 이종권 (미주불교신문 편집국장)
출처 www.koreanbuddhis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