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일화 27호]한국불교, 세계 참여 종교인과 소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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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그루 작성일2013.06.11 조회3,61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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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늦가을 한 통의 메일이 뉴욕에서 날아왔다.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정경일 씨였다. 정 박사(최근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유니온 신학대학원이 주최가 돼 2013년 봄 ‘국제 불교‧기독교 컨퍼런스-깨달음과 해방; 참여불교인과 해방신학자의 대화’를 열 예정이라며 도법스님을 공식 초청한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한 차례 영국을 다녀온 것 외에 해외 경험이 거의 없는 도법스님은 처음엔 많이 주저하셨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한국의 참여불교, 그리고 종단의 자성과 쇄신 결사, 화쟁위원회 등의 사업을 국제적으로 알릴 좋은 기회라고 설득 드리자 어렵게 승낙하셨다. 이렇게 해서 도법스님의 뉴욕 방문 준비가 시작됐다.
4월16일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해 택시를 잡아타고 곧바로 브로드웨이에 있는 유니온으로 향했다. 차창을 통해 본 뉴욕 풍경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마천루가 하늘을 찌를 듯이 키 재기 싸움을 하는 도시로 생각했는데, 뉴욕은 아주 오래되고 낮은 건물들이 적절한 공간을 차지하며 안정감 있게 자리 잡은 낡은 도시였다. 유니온대학 역시 지은 지 백 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육중한 석조 건물이었다. 6층 높이의 건물이 ㅁ 자 형으로 이어졌고 그 안에 작지만, 짜임새 있게 꾸민 캠퍼스가 자리 잡았다.
도법스님과 일행은 유니온대학 내부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묶으며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 열두 시간 넘게 강행군이 이어지는 컨퍼런스에 발표자나 토론 패널로 또는 참석자로 참여했다. 컨퍼런스의 키워드는 ‘고통(suffering)’이었다. 경제적 격차, 전쟁과 폭력, 성, 인종주의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 고통에 대해 종교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가 세계적 종교인들의 경험과 지혜 속에서 연찬 됐다.
도법스님은 19일 참여불교 동서양의 대화 토론 패널로 참여하기도 했고 ‘나의 불교수행, 화엄세계관과 생명평화운동’이란 타이틀로 대중연설도 했다. 주로 한국의 선불교 전통만을 기억하고 경험한 참석자들에게 화엄경의 인드라망 세계관, 본래부처와 동체대비로 집약되는 대승불교, 참여불교사상을 연설하니 다소 생경한 것이라 느끼면서도 매우 흥미롭고 새롭다는 반응들이었다. 종단의 화쟁위원회, 자성과쇄신결사 활동과 생명평화운동도 소개했다. 20일엔 한국인 참석자들이 뜻을 모아 한반도 생명평화를 위한 기도의 시간을 별도로 가졌다.
폴 니터(유니온신학대학원 석좌교수), 울리히 두흐로프(하이델베르크 석좌교수), 법륜스님(정토회 지도법사), 혜민스님(뉴햄프셔대 교수) 등과의 언론대담도 잇달아 진행됐다. 컨퍼런스 일정을 마친 뒤 미국 주요사찰 방문 및 종교지도자 면담이 이뤄졌다. 뉴욕 원각사에서 일요 법문을 진행했으며 뉴욕 불광선원을 방문해 미동부특별교구장인 휘광스님 등과 해외포교와 관련한 대담도 나눴다.
원불교의 미주 포교를 위한 명상 및 숙박 시설인 원달마센터, 천주교를 바탕으로 한 도농공동체인 제네시스 팜을 방문했고 △버룩 칼리지의 유대교와 가톨릭 교목 및 학생들과 면담 △힌두교 사원 겸 복지시설 방문 및 우마 미소레카 박사와 환담 △시크교 사원 방문 및 펀잡TV 언론 인터뷰 △뉴욕 유대교 커뮤니티 방문 △미국 초종파센터(Interfaith Center) 레프 촐레 브라이어 대표 환담 △9.11테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 방문 영가 천도 의식 집전 등 숨 가뿐 일정을 소화했다. 아마도 한국 불교계에서 이렇게 다양한 종교지도자들을 만나고 종교공동체를 방문한 것은 최초가 아닌가 싶다.
이번 방미를 통해 세계적 종교 지도자들은 한국불교가 선불교의 전통과 함께 참여불교란 또 하나의 기둥으로 우뚝 서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했을 것이다. 이런 국제적 공감대가 앞으로 더욱 확산되고 심화하길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서원해 보았다.
글-백승권(대한불교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