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고액연봉 내려놓고…홀연히 떠난 까닭 [LA중앙일보 1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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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4.06.01 조회3,27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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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부터 깨달음에 목말라
철학·종교학 공부뒤 불교 귀의
시끄러운 삶 속에서 참선 하라
인천 용화사 송담 스님에 배워
김용 세계은행 총재 화두 멘토
불교TV에서 영어 참선 강의도
뜻밖이었다. 지난달 26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온라인 매체인 '허핑턴포스트'에 한 조계종 스님의 기사가 올랐다. 제목은 '유튜브에서 오랜 지혜를 전하는 하버드 출신 스님과의 만남(Meet The Havard-Educated Monk Who's Bringing Ancient Wisdom To YouTube)'이었다.
주인공은 환산(49) 스님이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하버드대와 NYU 대학원에서 공부한 한인 2세다. 그는 자신에게 보장된 어마어마한 연봉과 다니던 로펌을 팽개치고 인천 용화사 송담 스님 밑으로 출가했다. 용화사에서 환산 스님을 만났다.
- 무엇에 그토록 목말랐나.
"왜 사는 걸까. 왜 태어났을까. 우리는 왜 고통을 받을까.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될까. 열 살 무렵부터 이런 물음이 내 안에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를 읽었다. 참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 주인공을 동경했다. 그가 산 삶의 방식 말이다. 그러나 똑같이 할 생각은 없었다. 그때는 그저 좋았을 뿐이었다."
-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했다.
"처음에는 철학과에서 공부했다. 학과목에는 서양철학만 있었다. 그들은 이성을 강조했다. 이성과 논리로 세상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의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동양적 해법이 궁금했다. 커리큘럼을 봤더니 불교·힌두교·도교·유교 등의 동양철학은 모두 종교학과에 있더라. 그래서 종교학으로 옮겼다."
- 옮겼더니 어땠나.
"내가 원하는 수업들이 다 있었다. 그곳에선 단지 신념체계(Belief system)만 가르치진 않았다. 총체적 경험(Total experience)에 대해서 말했다. 지식으로만 아는 건 진정으로 아는 게 아니니까."
그는 일본 스즈키 선사의 '젠(Zen·禪)'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당시에는 미국에서 한국 불교를 접하기가 어려웠다. 크리슈나 무르티, 오즈 라즈니쉬 등의 명상 서적도 읽었다. 불교·힌두교·도교·그리스도교·유교·이슬람교 등 세계 종교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환산 스님은 "세계 종교들은 서로 다른 점보다 비슷한 점들이 더 많더라"고 말했다.
- 결국 종교학을 택했다. 목마름은 여전했나.
"갈수록 목마름은 커졌다. 내겐 스승이 필요했다. 한국계 미국인 사회에서 선지식을 수소문했다. 많은 이가 10년간 묵언(默言·말을 하지 않음) 수행을 한 인천 용화사의 송담 스님을 추천했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인 1987년, 그는 한국을 찾았다.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지식으로 손꼽히던 송담 스님을 만났다. 어설프게 삼배하는 그에게 송담 스님은 "네가 산에서 참선하는 걸 원한다면 가도 좋다. 나는 그런 걸 가르치지 않는다. 너의 삶 속에서 참선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년간 머물다 미국으로 돌아갔다.
- 왜 다시 돌아왔나.
"소위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는 로펌에 취직도 했다. 굉장한 연봉이 보장됐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내게는 무의미했다. 자꾸 송담 스님 가르침이 떠올랐다."
결국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작은 암자에서 송담 스님이 출가하는 그의 머리를 직접 깎으며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대중이 밥 먹으면 같이 밥 먹고, 대중이 잠자면 같이 자고, 일하면 같이 일하고, 참선하면 같이 참선하면 된다" 고 조언했다. 지금도 그는 그 말을 통째로 외우고 있다.
- 송담 스님 곁에서 12년째 시자 소임을 맡고 있다. 뭘 배웠나.
"이렇게 여쭤본 적이 있다. '옛날에는 스님들 생활이 단순했습니다. 나무하고, 물 긷고, 밥 짓고. 요즘 스님들은 컴퓨터도 하고, 동영상 촬영 장비도 쓰고, 사무도 봅니다. 수천 명의 사람이 방문합니다. 이렇게 복잡한 가운데서 정말 깨달을 수 있습니까?' 송담 스님께서 불쌍하다는 듯이 한참 저를 쳐다보셨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답하셨다. '만약 네가 조용한 곳에서 참선을 배운다면 시끄러운 곳에 가면 할 수가 없다. 만약 네가 시끄러운 곳에서 참선을 배운다면 어디에 가든 참선을 할 수 있다. 화가 나거나, 두렵거나, 아플 때도 말이다.'"
환산 스님은 출가 후 25년간 수행에 매진했다. 이제 조심스럽게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건넨다. 지난해 12월부터 BTN불교TV에서 '환산 스님과 함께 영어로 배우는 참선(매주 월 오후 3시)'이 방영 중이다. 환산 스님은 하버드대 선배인 세계은행 김용 총재의 화두 참선 멘토이기도 하다. 지난 설 연휴 때도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김 총재는 일부러 인천공항에서 갈아타는 비행기 노선을 택했다. 공항 VIP실에서 환산 스님을 잠시 만나 화두 참선에 대한 궁금증을 직접 물어봤을 정도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환산 스님=1965년 생.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재미동포 2세다.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 학사, NYU에서 심리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90년에 인천 용화사에서 출가했다. 올해 87세인 송담 스님의 시자 소임을 12년째 맡고 있다. 세계은행 김용 총재의 화두 참선 수행 멘토다. 25년간 수행만 하다가 지난해 말부터 유튜브와 BTN불교TV 등에서 영어 법문을 시작했다.
철학·종교학 공부뒤 불교 귀의
시끄러운 삶 속에서 참선 하라
인천 용화사 송담 스님에 배워
김용 세계은행 총재 화두 멘토
불교TV에서 영어 참선 강의도
뜻밖이었다. 지난달 26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온라인 매체인 '허핑턴포스트'에 한 조계종 스님의 기사가 올랐다. 제목은 '유튜브에서 오랜 지혜를 전하는 하버드 출신 스님과의 만남(Meet The Havard-Educated Monk Who's Bringing Ancient Wisdom To YouTube)'이었다.
주인공은 환산(49) 스님이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하버드대와 NYU 대학원에서 공부한 한인 2세다. 그는 자신에게 보장된 어마어마한 연봉과 다니던 로펌을 팽개치고 인천 용화사 송담 스님 밑으로 출가했다. 용화사에서 환산 스님을 만났다.
- 무엇에 그토록 목말랐나.
"왜 사는 걸까. 왜 태어났을까. 우리는 왜 고통을 받을까.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될까. 열 살 무렵부터 이런 물음이 내 안에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를 읽었다. 참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 주인공을 동경했다. 그가 산 삶의 방식 말이다. 그러나 똑같이 할 생각은 없었다. 그때는 그저 좋았을 뿐이었다."
-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했다.
"처음에는 철학과에서 공부했다. 학과목에는 서양철학만 있었다. 그들은 이성을 강조했다. 이성과 논리로 세상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의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동양적 해법이 궁금했다. 커리큘럼을 봤더니 불교·힌두교·도교·유교 등의 동양철학은 모두 종교학과에 있더라. 그래서 종교학으로 옮겼다."
- 옮겼더니 어땠나.
"내가 원하는 수업들이 다 있었다. 그곳에선 단지 신념체계(Belief system)만 가르치진 않았다. 총체적 경험(Total experience)에 대해서 말했다. 지식으로만 아는 건 진정으로 아는 게 아니니까."
그는 일본 스즈키 선사의 '젠(Zen·禪)'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당시에는 미국에서 한국 불교를 접하기가 어려웠다. 크리슈나 무르티, 오즈 라즈니쉬 등의 명상 서적도 읽었다. 불교·힌두교·도교·그리스도교·유교·이슬람교 등 세계 종교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환산 스님은 "세계 종교들은 서로 다른 점보다 비슷한 점들이 더 많더라"고 말했다.
- 결국 종교학을 택했다. 목마름은 여전했나.
"갈수록 목마름은 커졌다. 내겐 스승이 필요했다. 한국계 미국인 사회에서 선지식을 수소문했다. 많은 이가 10년간 묵언(默言·말을 하지 않음) 수행을 한 인천 용화사의 송담 스님을 추천했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인 1987년, 그는 한국을 찾았다.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지식으로 손꼽히던 송담 스님을 만났다. 어설프게 삼배하는 그에게 송담 스님은 "네가 산에서 참선하는 걸 원한다면 가도 좋다. 나는 그런 걸 가르치지 않는다. 너의 삶 속에서 참선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년간 머물다 미국으로 돌아갔다.
- 왜 다시 돌아왔나.
"소위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는 로펌에 취직도 했다. 굉장한 연봉이 보장됐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내게는 무의미했다. 자꾸 송담 스님 가르침이 떠올랐다."
결국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작은 암자에서 송담 스님이 출가하는 그의 머리를 직접 깎으며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대중이 밥 먹으면 같이 밥 먹고, 대중이 잠자면 같이 자고, 일하면 같이 일하고, 참선하면 같이 참선하면 된다" 고 조언했다. 지금도 그는 그 말을 통째로 외우고 있다.
- 송담 스님 곁에서 12년째 시자 소임을 맡고 있다. 뭘 배웠나.
"이렇게 여쭤본 적이 있다. '옛날에는 스님들 생활이 단순했습니다. 나무하고, 물 긷고, 밥 짓고. 요즘 스님들은 컴퓨터도 하고, 동영상 촬영 장비도 쓰고, 사무도 봅니다. 수천 명의 사람이 방문합니다. 이렇게 복잡한 가운데서 정말 깨달을 수 있습니까?' 송담 스님께서 불쌍하다는 듯이 한참 저를 쳐다보셨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답하셨다. '만약 네가 조용한 곳에서 참선을 배운다면 시끄러운 곳에 가면 할 수가 없다. 만약 네가 시끄러운 곳에서 참선을 배운다면 어디에 가든 참선을 할 수 있다. 화가 나거나, 두렵거나, 아플 때도 말이다.'"
환산 스님은 출가 후 25년간 수행에 매진했다. 이제 조심스럽게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건넨다. 지난해 12월부터 BTN불교TV에서 '환산 스님과 함께 영어로 배우는 참선(매주 월 오후 3시)'이 방영 중이다. 환산 스님은 하버드대 선배인 세계은행 김용 총재의 화두 참선 멘토이기도 하다. 지난 설 연휴 때도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김 총재는 일부러 인천공항에서 갈아타는 비행기 노선을 택했다. 공항 VIP실에서 환산 스님을 잠시 만나 화두 참선에 대한 궁금증을 직접 물어봤을 정도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환산 스님=1965년 생.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재미동포 2세다.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 학사, NYU에서 심리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90년에 인천 용화사에서 출가했다. 올해 87세인 송담 스님의 시자 소임을 12년째 맡고 있다. 세계은행 김용 총재의 화두 참선 수행 멘토다. 25년간 수행만 하다가 지난해 말부터 유튜브와 BTN불교TV 등에서 영어 법문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