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화 46호]집집마다 목탁소리 예불소리 들리게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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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람 작성일2015.02.09 조회3,15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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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베이사이드에 위치한 관음사는 어린이들의 웃음과 신도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젊은 절이다. 지현스님은 학부모를 대신해 학교에도 가고 젊은 엄마들의 도우미도 되고 상담사도 된다. 신도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줘야 마음이 편한 지현스님, 잠시 한국에 오신 스님으로부터 미국 포교 현장에 대한 귀한 말씀을 들었다.
-시작
우연히 미국에 가게 되었는데 제가 가는 곳마다 한국 사찰이 없었어요. 그래서 마을마다, 곳곳마다, 집집마다 목탁소리, 염불소리가 들리도록 하고 싶다고 발원했습니다. 별로 가진 것도 없이 시작하다보니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관세음보살을 그려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었는데 컴퓨터가 없어서 어느 미국분의 집에 가서 그렸어요. 관세음보살의 입술만 그리는데 1주일이 걸렸습니다. 함부로 그리면 안 되니까 정성을 더 하고 더 하고. 그 분이 감동받으셨어요. 정말 부처님은 그렇게 대해야 할 것이라고요. 그렇게 그린 그림을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관음사가 그렇게 시작된 것이지요. 참, 그 미국거사님은 나중에 계를 받고 신도가 되었어요.
-고난과 봉사
다들 그렇듯이 고생도 많았습니다. 영양실조로 손톱도 까맣게 되었어요. 마트 가서 송편도 빚고 청소도 하고. 베이비 시터도 했죠. 그런데 일은 했는데 보시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중간에서 다른 사람이 가로챈 경우도 있었고요. 얼마나 급한 사정이 있으면 그랬을까 싶어 그 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저도 이런데 유학생들도 낯선 이국땅에서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유학생이 자주 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월요일에는 된장국, 화요일에는 청국장, 수요일은 김치찌개 날마다 다른 음식을 준비해서 먹도록 했어요. 그리고 밤 12시고 새벽 5시고 학생들에게 부처님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학생들은 불교가 이런 면이 있느냐고 놀라기도 하구요.
-보람
관음사는 1995년 종교법인으로 법적 자격을 얻었습니다. 관음불교대학도 설립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산스크리트어로 신묘장구대다라니도 가르치고 토플도 가르쳤어요. 관음불교대학은 대학이 아니라 박사과정이라고 말들을 했죠. 어렵지만 그래도 재미있다고 했어요. 그때 같이 공부했던 사람들이 귀국해서 방송 PD도 되고 정치가도 되고 카이스트에도 근무하고. 다 잘되어서 기쁩니다. 저희 절 앞이 바로 공원이고 학교도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도 오고 엄마들도 자주 옵니다. 관음사에 오는 어린이들에겐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악기를 하나씩 꼭 배우도록 합니다. 그래서 저희 절에는 아이들 웃음소리, 음악소리가 끊어지지 않죠.
-희망
한국에 오니 참 좋네요. 그래도 제가 있을 곳은 미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도량불사를 10년 정도 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직접 발로 뛰었거든요. 그래서 미국법에 관해서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활용해서 한국 교민들도 더 도와야 하고 또 미국인 중에 불교에 관심 있는 분들도 도와야 하고, 할 일이 참 많아요. 유대인이든 이슬람신자이든 불교에 대해 말해 주면 마음이 움직이더라구요. 이런 분들을 잘 도와드려야죠. 영어를 잘 하시는 분들이 계시면 좋은데 부족한 저라도 남아서 많은 분들을 도와드려야죠. 전에 기독교행사에 제가 찬불가로 프로그램을 짜서 공연했더니 사람들이 불교가 이렇게 아름다운 면이 있느냐고 놀랐습니다. 이런 불교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 우리 좋은 신도님들, 기도 열심히 하시는데 앞으로도 더 잘 하시도록 돕고 싶습니다.
스님은 미국의 상징 자유의 여신상을 직접 보았을 때 부처님의 뜻으로 미국에 계속 있게 된다면 저 만큼 멋진 관세음보살상을 세워 미국의 또 다른 상징으로 만들고 싶다고 발원하셨다고 한다. 이제 스님의 끝없는 헌신은 교민들의 마음마다 자유의 여신상보다 더 거대하고 아름다운 관세음보살상을 우뚝 세워 놓았다. 관음사에서 울려 퍼지는 기도소리가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팔이 되어 이국땅으로 퍼져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