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미주에서 한국불교 알린 고 경암스님…조계종 미동부해외교구 29일 영결식(뉴시스 1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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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4.08.31 조회3,04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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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등 미동부에서 한국불교를 뿌리내리는데 공헌한 경암 큰스님은 지난 5월2일 입원 가료중 세수 73세 법랍(法臘) 56세로 입적했다. 경암 스님은 1981년 도미후 워싱턴 최대의 한국사찰 보림사를 창건하는 등 33년간 미국의 심장부에서 한인들은 물론, 미국인들을 위한 포교활동을 펼치며 한국불교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맡았다.
미주불교신문 발행인을 맡아 불교언론의 창달에도 이바지한 스님은 특히 선서화(禪書畵)로 ‘선학의 선승’이라는 국제적 명성을 얻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미주 한국불교의 큰 별이 입멸한 것은 지난 2007년 뉴욕원각사 조실 태허당 법안 대종사의 열반이후 7년만이어서 이번 영결식에 각별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큰스님의 영결식이 늦어진 것은 당초 퇴원예정일이었던 날 돌연한 쇼크사로 입적한 것이 의문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신도들과 법적 상속자인 큰스님의 친조카 문기성 워싱턴 민주평통위원이 당국에 사인 조사를 의뢰했고 아직 공식 결과는 나오지 않았으나 큰스님의 여법한 영결식을 위해 상주인 문 위원이 법원의 판결을 받아 봉행하게 되었다.
조계종 미동부해외특별교구(교구장 휘광스님) 차원에서도 부교구장 지광(뉴욕원각사 주지) 스님과 상민스님, 불광선원의 문종스님, 대관음사 성호스님이 영결식과 이튿날 열리는 다비식에 참석, 큰스님의 공덕과 업적을 기리게 된다.
문기성 위원은 “불자들은 물론, 미국인들이 존경하고 따랐던 우리들의 큰스님을 본래 나고 없는 자리에 너무 늦게 보내드리게 되어 찢어지는 마음이지만 부처님의 가피로 미동부해외특별교구 차원에서 영결식을 봉행하게 되었으니 큰스님의 마지막 길을 많은 불자들이 함께 해주시길 당부드린다”고 전했다.
1942년 제주 태생인 경암스님은 서당 훈장이었던 당숙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천자문은 물론, 논어 맹자까지 떼고 한문시를 짓는 경지까지 통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열네살인 1955년부터 광주 무등사 인근에서 의제 허백련 선생에게서 동양화 사사를 받다 1957년 마곡산에 입산후, 이듬해 서울 조계사에서 김일현(金一玄)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수지를 받았다.
스님이 미국에 오게 된 것은 김재규 전 중정부장과의 남다른 인연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10·26 정변의 주역이 되면서 서슬 퍼런 당시 상황으로 도피생활을 했던 스님은 1981년 미주에서 한국불교를 알리겠다는 서원을 하고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워싱턴에 왔다.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불법 수호에 쉼이 없던 스님은 1984년 1월부터 지하실을 얻어 정식 법회를 열었고 그해 7월 1984년 7월 알렉산드리아 한인 소유의 건물을 임대해 보림사의 기초를 일궜다.
그 무렵 워싱턴에 유학온 외조카 문기성씨도 보림사 중흥에 없어선 안될 존재였다. 1989년 현재의 페어팩스 법당으로 이전하면서 미주불교신문을 발행하고 불교방송을 송출하는 실무를 맡았던 문 위원은 “한번은 인근 골프장의 농간으로 AT&T의 20m 안테나가 보림사 바로 옆에 세워질뻔한 위기가 있었는데 페어펙스 정부를 찾아가 잘못된 서류를 일일이 지적해 무산시켰다. 보림사로선 그때가 가장 큰 위기였다”고 회고했다.
경암스님은 탁월한 동양화가이자 시인이었다. 보림사 중창불사를 위해 88년 처음 귀국한 스님은 사형의 권유로 약 두달간 108점의 그림을 그렸고 전시회를 통해 10만달러를 모았다. 1997년 천불전 법당과 천불 봉안을 위해 50만달러를 들여 새 법당을 지은 것도 스님의 선서화들이 워낙 이름높았던 덕분이었다.
‘한국의 피카소’로 불린 중광 스님에게 추상화를 가르치는 등 막역한 관계였던 경암스님에 대해 도이 하쿠데이(土井白亭) 한중일 예술문화교류회장은 “경암스님의 선서화 계보는 중국 청나라 양주 팔경의 한사람인 정판교(鄭板橋)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놀라워 하기도 했다.
스님은 2002년엔 워싱턴과 가까운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26만여 평의 대지를 구입해 강원(講院), 선원(禪院), 율원(律院)을 두루 갖춘 미주 최초의 국제총림을 조성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추진해왔다.
이를 위해 한국과 미국 일본 등지에서 글씨와 그림, 도자기에 표현한 선서화 전시회를 잇따라 열어 주목을 받았다. 전 마곡사 주지 원혜 스님은 “30년 전 목탁 하나 들고 미국으로 건너간 사숙 경암 스님이 고난을 극복하고 워싱턴 보림사를 세우는 등 한국불교를 알리기 위해 앞장서며 묵향 가득한 작품으로 삶의 의미를 되새겨 주고 있다”며 찬탄하기도 했다.
생전에 경암스님은 선서화를 일러 “수도인의 내면의 심경과 불교의 진리를 글귀에 담아 그 진수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선으로서의 서(書)이고 선묵화의 경지”라며 “예술가 자신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번뇌의 옷을 벗어 버리고 청빈한 구도의 선풍으로 정진해 나갈 때 그 예술이 존경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닫았던 보림사 정상화 추진” |
해인 스님 “곧 신도총회 개최 논의” 밝혀 |
지난 5월 경암 주지 스님 입적 후 문을 닫았던 워싱턴 보림사가 다시 정상화 추진에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해인 스님은 17일 “경암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보림사를 계속해서 유지하기로 발원했다”며 “오는 30일 경암 스님의 장례식이 끝나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보림사의 정상화를 위한 신도 총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인 스님은 경암 스님의 상좌였으며 현재는 메릴랜드 무량사 주지로 있다. 1984년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에서 개창된 대한불교조계종 워싱턴 보림사는 경암 스님이 5월2일 입적한 후 재정 문제 등으로 사실상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이어 해인 스님은 지난 6월22일 총회를 열어 “절의 재정상황이 너무 어려워 더 이상 유지하기가 힘들어 문을 닫기로 했다”고 공표한 바 있다. 해인 스님은 보림사 정상화에 나선 이유에 대해 “77만달러에 이르는 보림사의 부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림사의 매각을 심각하게 고려했으나 많은 고민 끝에 어떤 일이 있어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여러 스님들과 신도 분들에게 승려로서 떳떳하고 입적하신 스님의 상좌다운 모습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해인 스님은 향후 정상화 계획에 대해 “경암 스님 입적 후 중단됐던 일요 법회는 물론 3년 기도 불사를 통해 보림사를 다시 정상적인 사찰로 만드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셰넌도어에 위치한) 아란야사에 모셔 놓은 보림사 부처님은 한국의 이름 있는 불모장에게 개금을 요청해놓은 상태이며 개금을 마치는 대로 보림사로 모셔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경암 스님의 조카인 문기성 씨는 해봉 김경암 스님 영결식 및 장례식을 이달말 갖는다고 19일 공고했다. 영결식은 오는 29일(금) 저녁 7시, 장례식은 30일(토) 오후 1시 페어팩스 퓨너럴 홈에서 엄수된다. 장례식은 경암 스님 시신에 대한 부검 등으로 인해 늦어졌다. 장례 문의 (202)596-7758 < 이종국 기자>
[워싱턴 한국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