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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20.12.09 조회2,20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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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스님
-. University of the West에서 Doctor of Buddhist Ministry 박사과정.
-. Cedars Sinai Hospital 병원에서 채플린으로 근무
나는 고함지르며 화내는 사람 앞에서는 얼어 붙는 편이다. 이런 사람 앞에서는 내가 잘 못 한것도 없는데 사과부터 하고 내가 앞으로 잘 하겠다는 다짐?까지 한다. 아마 조금이라도 다툼이나 분쟁이 일어 나는 걸 부담 스러워 하는 내 성격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화가 날때 고함치는 성격의 사람과는 내가 별로 가까이 안한다. 그런데 환자가 이런 사람일 경우는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
병원에서 일한지 3년쯤 되니 병원에 자주 입원하는 환자들과는 친분이 쌓인다. 그 분들 중에 한분이 다시 병원에 입원하셨기에 오전에 찾아가니 병실에서 X 레이 찍어야 한다고 해서 내가 오후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환자는 나를 보고 무척 반가워하며 혹시나 내가 다시 안 올까봐 정확히 몇시에 올 거냐고 물어서 오후 4시 전까지는 꼭 오겠다고 말하고 나왔다.
오후에 다시 찾아 오겠다고 약속했던 환자의 병실에 가까이 다가가니, 그 환자가 화가 나서 고함치는 소리가 쩌렁 쩌렁 복도까지 다 들렸다. 고래 고래 소리지르고 무언가를 집어 던지는 소리가 났고, 간호사가 병실에서 급하게 뛰어 나오는것도 보였다. 아……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진짜 심장이 쿵쿵 거리기 시작했다. 트라우마 처럼 내가 잘 못한것도 없는데 순간 얼어 붙어서 그 환자 병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 서서 한참 그냥 기다렸다. 병실에 안들어 갈 수도 있는거 아는데 채플린인 내가 이 환자를 진정 시키지 않으면 계속 간호사들이 힘들거 같아서 조용해진 병실로 들어갔다.
환자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지금 있었던 일에 대해 불만 접수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를 보자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고 나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 금요일에 응급실에서 부터 있었던 일로 시작해서, 환자의 코에 튜브를 넣어 위장에 넣게 된 이야기, 검사를 왜 잘 못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자신이 왜 지금 화가 머리끝까지 날수 밖에 없는 지에 대한 이야기 등등을 했다.
환자는 화가 났던 이야기를 끝내면서 나에게 “무구~ 내 이마에 손을 얹어 줄수 있나요?” 라고 요청을 했다. 내가 장갑을 끼고 환자에게 다가가서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어 주자, 환자는 나의 왼손을 꽉 잡았다. 그때 다른 간호사가 들어와서 환자의 코에 연결 되어 있는 튜브로 주사기를 이용해 물약을 집어 넣기 시작했다. 환자는 나에게 튜브로 약이 들어가면서 배가 너무 많이 아프니까 배에 손을 얹어 달라고 했다. 나는 환자에게 “제 손이 약손인거 아나요? 특별히 제가 해주는 겁니다.” 라고 농담을 하고 환자의 배를 살살살 문질러 주었다.
환자는 내게 “당신은 나를 진정 시켰어요. 정말 오늘은 화가 나는 일만 있었는데 당신이 오니 살거 같아요. 나를 위해 기도해 줄래요?”라고 말했다. 나는 환자에게 기도를 해주고 엷은 미소를 띠는 환자를 뒤로 하고 병실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내가 힘들어서 우둑하니 아무것도 못하고 의자에 앉았다. 환자는 진정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진정이 안되어서 가만히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고함치며 화내는 사람을 싫어하는데 사실 나 뿐만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게 아닐까? 내가 이렇게 그 사람에게 다가가기 싫으면 모든 사람들도 똑같이 다가가기 싫은게 아닐까? 그나저나 나는 내가 화가나면 어떤 모습으로 화를 내지? 혹시 나도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따라 고함치며 화를 내지는 않는가? 남을 흉보며 닮는다고 저런 사람 싫다고 했는데, 사실은 내가 그런 모습이면 어떻하지?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나는 겁이 덜컥 났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화를 내는지 잘 모르겠으니, 친한 지인에게 연락해서 내가 화가나면 어떤 모습인지 물어 보고 그때 다시 깊이 나를 돌아 봐야겠다. 설마… 나도 화가 나면 그 환자처럼 고함 지르며 화를 낸다고 하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