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절에서 한국말 배우다 온 가족 불자 됐네(불교신문 1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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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심행 작성일2016.05.13 조회2,77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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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뉴욕 불광선원 한국문화학교 현장
뉴욕과 뉴저지 아이 30명
매주 토요일엔 사찰 찾아
한국어와 고국문화 배워
사찰 한글학교 보내다가
부모도 자연스레 불자돼
한글학교가 포교 중심축
700만명을 넘어선 재외동포는 세계화시대를 맞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이들 또한 우리나라의 중요한 인적자산이다. 하지만 개인주의 문화가 확산되고 외국에서 출생한 교포 2, 3세대 수가 증가함에 따라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잊은 채 살고 있는 재외동포의 수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이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미국 뉴욕 불광선원(주지 휘광스님)은 지난 2007년부터 ‘불광한국문화학교’를 통해 재외동포 자녀들에게 한국어와 한국전통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먼 이국땅에서 교포 2, 3세로 자란 아이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2014년 재외한인사회연구소 조사결과에 따르면, 재미교포 1세대의 가정 내 한국어 사용률이 94%인데 반해 1.5세대는 78%, 2세대는 51%로 급격히 떨어진다. 불광한국문화학교 학생들도 지도교사나 학부모가 자리를 비우거나 신경이 딴 곳으로 가 있으면 곧바로 영어로 의사소통을 진행할 정도다. 대다수 학생들이 미국에서 태어난 교포 2, 3세대이다 보니 그들의 모국어는 곧 영어다. 한국어는 집과 사찰 등 한정된 곳에서만 쓰는 제2외국어인 셈이다.
나이도 어린데다가 한국말에 서툴다보니 갖가지 해프닝으로 불광한국문화학교 한국어 수업시간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제 돌아가면서 화이트보드에 한글 단어를 써볼 거예요.” “어떤 단어예요?” “‘아빠’를 써보세요.” 지난 4월16일 불광선원 큰법당 청년부방에서 진행된 불광한국문화학교 2반(7~8세반)수업에서 한 어린이가 자신있게 화이트보드에 한글 단어를 썼다. 그 단어는 바로 ‘애비’였다. 이를 지켜본 지도교사와 보조교사는 웃음이 빵 터졌지만 아이들은 영문을 몰라 서로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 아이는 할머니가 자기 아빠를 부를 때마다 “애비야!”라고 호칭하던 게 기억났던 모양이다. ‘애비’와 ‘아빠’라는 낱말의 뜻을 지도교사로부터 전해 듣고서야 아이들도 다함께 웃을 수 있게 됐다.
같은 시각 불광선원 앞마당과 관음전 다선실, 어린이놀이방에도 1, 3, 4반 수업이 진행됐다. 초등학교 1학년생 이하의 제일 어린 아이들로 구성된 1반은 사찰 앞마당에 핀 목련 등 봄꽃들을 찾아 직접 살펴본 뒤 교실로 이동해 색종이와 크레파스 등을 통해 꽃작품을 만들었다. 3반은 ‘뭐 하고 있어요?’라는 주제로 어휘와 문법, 표현법 등을 배웠으며 최고령인 12~14세로 구성된 4반은 스티브 잡스 관련 영상물을 살펴본 뒤 각자 한글로 소감문을 적는 시간을 통해 한국어를 배웠다.
불광한국문화학교는 한국어를 비롯해 전래동화, 전래놀이, 역사, 미술, 음악, 한자, 명상 등 다양한 한국문화를 전하고 있다. 연간 2회에 걸쳐 15주 과정으로 마련됐다. 아이들을 가르쳐 본 이들로 지도교사진을 구성하고 있으며 고교생 5명을 보조교사로 활용해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익힐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있다.
불광한국문화학교는 매주 토요일 오전9시30분부터 오후1시까지 사찰에서 진행되지만 성경공부를 하는 교회의 한글학교와 달리 최대한 불교적 색채를 띄지 않는다. 대신 불광선원은 매주 일요일 오전11시마다 어린이법회를 통해 불교적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어린이법회에서는 삼귀의와 예불 등 불교의식은 물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한 다채로운 불교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다.
불광한국문화학교는 매주 토요일 오전9시30분 관음전에서 한국인으로서, 한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키우기 위해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으로 시작한다. 본격적인 한글수업에 앞서 큰법당으로 이동해 5분 명상을 통해 차분하게 마음을 다잡는다. 이후 1반에서 4반까지 각자 강의실에서 2시간 동안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배운다. 낮12시가 되면 관음전으로 다시 모여 태권도, 전래놀이, 새천년 건강체조 등 신체를 활용한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동생 도윤(8)이와 함께 불광한국문화학교를 다니고 있는 김민채(12)양은 “선생님 모두가 친절하고 재미있게 수업도 하는데다가 아이들과도 재미있게 놀 수 있어 동생과 함께 오고 있다”면서 “일요일이면 어린이법회에도 다녀서 매주 주말이면 불광선원에서 보낸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현민 양의 아버지인 하태구(46)씨는 “집에서 무조건 한국말로 대화하도록 유도하고 있는데, 불광한국문화학교를 통해 일상대화는 물론 다양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도와줘 고맙다”면서 “이제는 주말이면 아이들이 먼저 절에 같이 가자고 할 뿐만 아니라 하는 일도 잘 돼서 온가족이 즐겁게 절에 다닌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불광한국문화학교는 신도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2007년 개원한 한글학교다. 어린 자녀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쳐주고 싶지만 당시 한글학교는 교회나 전도사 등이 운영하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교회의 한글학교를 보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한인 사회 대다수의 모임 자체가 교회를 중심으로 움직이는데다가 자녀가 교회 한글학교를 다니다 보니 불자였던 학부모마저도 개신교로 개종하는 일까지 적지 않게 벌어지자 불광선원이 불광한국문화학교를 설립하게 됐다.
100곳이 훌쩍 넘는 개신교 한글학교와 달리 뉴욕과 뉴저지, 코네티컷 등 미국 동북부지역에서의 불교계 한글학교는 불광선원과 청아사 2곳이 전부다. 불광선원은 신도 가운데 젊은층의 비중이 높은 데다가 뉴욕과 뉴저지지역의 한인타운에서 1시간 이내에 위치해 있어 매 기수당 30명 내외의 학생들이 수강할 만큼 인기가 높다. 특히 불광선원은 해외포교의 중심축을 한글학교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불광한국문화학교의 효과는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불광선원 주지 휘광스님은 “개신교 중심의 한인사회 속에서 20년 동안 사찰을 운영하고 10년 동안 한글학교를 운영했지만 아직도 사찰과 한글학교를 모르는 이들 또한 적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 더 나아가 불교를 전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