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유 리카 스님과 레이아드 경의 행복이란?...불교포커스 10.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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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0.02.17 조회3,005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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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색한 광경이다. 나는 왕립예술원(the Royal Society of Arts) 안에 있는 우아한 응접실에 앉아있다. 내 맞은편에는 영국 귀족 한 명과 프랑스 출신의 스님 한 분이 아주 낮은 가죽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는데,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
▲ 마티유 리카(Matthieu Ricard)스님(왼쪽)과 경제학 교수 리차드 레이아드(Richard Layard)경 |
레이아드는 영국에서 손꼽히는 행복 [전문] 경제학자이다. 18세기 공리주의 사상가 제레미 벤담의 열성 팬인 레이아드는 자신의 저서인 『행복 - 신과학에서 얻는 교훈(Happiness: Lessons from a New Science)』에서 “우리들의 행복에 대해 정부가 철저하게 책임을 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말한다. “어떤 식으로 사는 것이 행복에 더 도움이 되는지 폭넓게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신 건강 서비스 ․ 가정교육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학교 안에서 긍정적 삶의 방식을 교육시키는 데 더 많은 공공 기금이 투입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빈곤 ․ 질병 ․ 알력(마찰)과 노예상태에 놓이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불행의 여러 모습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행복입니다. 물론 이 용어를 너무 단순화시키지 않는가 하는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한편 히말라야 산속의 은둔처에 살고 있는 수도승인 리카 스님은 이와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는 “문화적인 변화는 개인의 변화와 함께 할 때에만 시작될 수 있다”는 불교 이론을 제안한 인물이다. 지난 달 선보인 그의 최신 저작인 『명상의 기술(The Art of Meditation)』은 명상이나 이타심(altruism) 등과 같이 마음과 관련된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레이아드가 인생에서 성취와 행복에 영향을 주는 것에 가족 ․ 일 ․ 건강 ․ 심리 상태 등 일곱 가지가 있다고 믿고 있는데 반해, 리카 스님은 ‘마음이 모든 것 위에 있다’고 믿는다. 그는 “그대가 내적 평화를 갖고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편안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어릴 적이나 사회생활을 할 때에나 변함없이 ‘마음을 살피는 삶’을 살기 위해 이런저런 사사로운 관계를 피하며 살아 왔다. 신경과학계를 선도하고 있는 학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리카”라고 말해왔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실상 너무 과장되기는 하였지만(세상에 사는 사람들 중 ‘행복한지?’ 테스트를 해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실험 결과는 놀랄만하다. 뇌를 정밀 검사해보니 리카의 회백질(灰白質, grey matter: 척추동물의 중추신경에서 신경세포가 모여 있는 곳으로 중추신경의 조직을 육안으로 관찰했을 때 회백색을 띠는 부분. 회백질은 주로 신경세포와 그 수상돌기 ·무수신경돌기 등이 차지.)에서는 의식 ․ 주의(attention) ․ 학습이나 기억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감마(gamma) 파 수준의 물질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의 신경과학자 리차드 데비슨(Richard Davidson)박사에 따르면, “이런 사례는 신경과학계에서 단 한 번도 보고된 적이 없다.”
게다가 그의 뇌는 극적이라고 할 정도로 비대칭적이다. 왼쪽 전전두엽(前前頭葉, prefrontal cortex)이 부풀려져 있는 반면에 오른쪽 전전두엽은 오그라들어서 바짝 말라버린 자두 같다. 리카는 ‘행복’ 쪽으로는 비정상적이라 할 정도로 큰 경향이 있고, ‘부정적인 성질․ 소극성’에 대한 수용 능력은 거의 시들어버렸다.
이 스님은 “뇌만 재본 것이 아니다”라고 애써 설명한다. 거친 프랑스 억양으로 “과학자들은 뇌 ․ 얼굴 근육의 움직임 ․ 고요하게 지낼 수 있는 능력 등등의 요소를 조합해서 연구합니다. 이런 것들을 함께 살피게 되면 훨씬 더 좋은 건강한 마음을 보여주게 되지요”라고 말하는 그의 시선은 안정되어 흔들림이 없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금욕생활을 하는 불교 승려에 대한 내 생각 때문이기도 한데, 승려들의 금욕 생활에 대해 나는 정직하지 못하다고 여긴다.(여기서 ‘애플(Apple)’사 광고에 등장하는 달라이 라마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데!”라는 식의 책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의구심 비슷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티베트 불교 수행을 하면서 여러 해를 보낸 적이 있고, 결국 미몽(迷夢)에서 깨어나면서 그것을 마무리 지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인생의 다른 여러 측면들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영적 계발에 불균형적으로 초점을 두는 일에 대해 점차로 납득할 수 없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달라이 라마를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믿고 있지만, 2004년에 있었던 인터뷰에서 그는 “수도원 지붕 위에서 새를 쏘기도 한다”고 말한 적도 있고, 자기가 “나쁜 성질을 갖고 있다”고 인정하기도 하였다. 그뿐 아니라 그도 티베트 역사에 널리 퍼져있던 종파 분쟁에 관련이 있다. 그래서 “불교가 당신의 참 살이(wellbeing)를 어느 정도까지는 개선시켜줄 수 있을지 몰라도 인간으로서 가지는 나약함을 완벽하게 초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것을 얻어내려고 애쓰는 일에 의무감을 느끼는 것은 부담[짐]이다. 에디스 와톤(Edith Wharton: 1862~1937, 퓨리처 상을 받은 미국 소설가 ․ 디자이너)이 “우리가 행복해지려고 애쓰는 일만 멈추어도 꽤 괜찮은 세월을 누릴 수 있다”고 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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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 스님은 말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음악회[에서 연주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피아니스트들만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게 한다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은 음악을 즐
길 기회를 박탈당하게 될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 여러 해 동안 추진해 오신 세속적 영성(spirituality)이라는 개념(idea)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속적 영성을 통해 그대가 깨달음을 성취하리하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이 진실일 수 있다. 그런데 불교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로 나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그들 모두 너무 자주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한 승려가 딱딱거리며 고함을 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그는 냄비(wok) 두 개로 숱한 대중을 공격하였다. 과학자들은 리카가 꽤 상당한 수준의 행복을 체험하고 있다고 알아냈을 수도 있지만, 무의식적인 심리라는 어두운 미스테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리카는 “행이 잘 된 승려들은 자신들의 마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아주 선명하게 통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신경과학자들이 밝혀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공포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자신들의 감정을 되돌려보게 한 실험에서 명상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체험한 것을 묘사하는 글을 3쪽이나 쓸 수 있었지만 보통 사람들은 잘 해야 둘(2) 밖에 쓸 수 없었습니다.”
내가 “공포 영화를 보는 승려들이라고요?”라며 어색해하자, 그는 프랑스 사람 특유의 방식으로 어깨를 으쓱하고 입술을 오므리며 “그냥 실험이었다고요”라고 말한다.
리카가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똑같이 믿기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고서, 나는 그를 따뜻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불교로 개종한 수많은 서구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억지웃음이나 육체적 편견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는 ‘수행자 인 체’하지 않는다. 가벼운 마음으로 승복을 입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해주는 세속적인 충고와 깊은 종교적 삶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에는 런던대학교 경제학부의 ‘참 살이 프로그램’ 담당 책임자인 레이아드 경의 말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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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한다. “1970년대 말, 사람들이 점점 부유해지는데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증거를 발견하고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학교 교육을 그토록 강조하게 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자기 감정을 관찰해서 그것을 다스리는 법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면, 스스로에게 고요해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훨씬 더 많이 베풀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수도원에서 시작하고 있는 게 아니라 공공 정책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사회’를 크게 바라보면 그 시각은 매우 비슷합니다.”
레이아드의 말에 동의하는지 묻는 말에 머뭇거리며 대답을 피하고 있던 리카가 다시 배턴(baton)을 이어받는다. 그가 말한다. “수많은 학교에서 정규 시간에 침묵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너무 정교한 명상이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이타심에 대해 매일 간단하게 명상을 하게만 해도, 아이들의 성격과 학교 분위기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받아 레이아드가 말한다. “아, 예! 나는 우리 사이의 서로 다른 점보다는 견해를 함께 하는 점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행복해질 공간과 지원 기반을 갖춘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은 정부의 책임입니다. 명상과 이타심이 [전체가 아닌] 개인으로서 우리들의 행복을 강화해서 이 공간을 채우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철학이 꼭 상호 배타적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양쪽 다 상대에게 배워서 좋은 효과를 내는 실마리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이제 나의 냉소(冷笑)가 움츠러들기 시작한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 두 사람이 무엇인가를 탁 친 것 같다. 각국 정부가 행복을 위해 좀 더 나은 사회 정책을 펼친다면 세상은 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명상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면, 궁합이 잘 맞는 그런 것들을 세속 사회와 통합해내는 일도 좋지 않겠는가?
두 사람은 “[얼핏 다른 것 같아 보이는] 동양과 서양의 행복 철학이 어떻게 공동선을 이룩할 수 있을까?” 하는 전망에 대해 온몸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벤담의 ‘밖에서 안으로’ 접근법이 부처님의 ‘안에서 밖으로’ 접근법과 결합되면 아주 좋은 결과를 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