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와다 불교와 대승불교, 그리고 태국 담마까야 사원의 수행법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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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심행 작성일2016.04.27 조회2,203회 댓글0건본문
(2016년 1.29~2.6일, 태국불교문화 체험 후기)
1월 29일, 국제포교사회 회원 등으로 구성된 26명으로 구성된 순례단의 한명으로서 이번 태국불교문화 연수에 참가하게 된 것은 내게 정말 큰 행운이었다.
막연히 생각했던 상좌부 불교, 테라와다 불교의 진면목과 그 가치를 체험하고 인정하게 된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름도 생소했던 담마까야사원은 150만 평 부지에 100만 명의 신도를 수용할 수 있고, 3,000명의 스님이 살고 있으며 1,000명의 스님이 두타행을 하는 대단한 규모의 사원, 절제되고 소박한 수행환경,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봉사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운영에 큰 감명을 받았다.
이 글은 대승불교와 테라와다 불교의 차이점, 태국불교 수행법 중 담마까야 명상법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불교는 인도로부터 전래방향에 따라 북방불교(대승불교, Mahayana)와 남방불교(Theravada, 上座部)로 나누어진다. 한국을 포함하여 몽골, 티베트, 일본 등은 대승불교권이고, 스리랑카, 태국, 베트남,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 나라들은 테라와다 불교권을 형성하고 있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깨달음에 있지만 대승불교와 테라와다 불교 사이에는 있는 여러 가지 차이점들을 도표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 테라와다 | 대승불교 |
① 이상적인 인간상 | 아라한 | 보살 |
② 수행의 목표 | 개인의 해탈 | 上求菩提 下化衆生 |
③ 경전언어 | 빨리어 | 산스크리트어 |
④ 경전의 내용 | 佛說 | 佛說, 祖師의 교설 |
⑤ 중심교리 | 사성제, 팔정도 | 육바라밀 |
⑥ 보살에 대한 입장 | 번뇌가 남아 있음 | 깨달은 존재 |
⑦ 대표적 수행법 | 사마타, 위빠사나 | 좌선(묵조선, 간화선), 염불선 등 |
(도표 중 ③④⑤⑥는 파수라 스님의 법문 내용임)
대승불교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은 보살로 上求菩提 下化衆生의 보살행 중 하화중생을 강조한다. 반면에 테라와다는 개인의 해탈과 엄격한 계율, 수행을 강조한다. 경전언어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테라와다 불교는 부처님이 사용하셨던 팔리어로 된 경전을 근간으로 한 반면 산스크리트어로 쓰여 진 대승 경전과 대비된다. 테라와다 경전에는 佛說만이 기록되어 있지만 대승불교 경전에는 붓다의 교설로 붓다의 말씀뿐만 아니라 祖師의 說 역시 포함시키고 있다. 테라와다 경전의 교리는 모두 사성제와 팔정도와 관련되어 있고, 따라서 열반을 강조하게 되었다. 보살행을 중시하는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교리는 육바라밀이다. 이번 태국불교문화연수에서 법문과 수행을 담당했던 파수라 스님에 따르면, 테라와다 불교와 대승불교의 가장 큰 차이는 보살에 대한 입장의 차이라고 한다. 테라와다에서는 아라한이 되어야 번뇌(kilesa)에서 해탈한다고 하며, 보살은 아직 번뇌가 남아 있는 존재로 생각한다. 하지만 대승불교에서 보살은 이미 깨달은 존재이다.
테라와다 불교의 수행법은 사마타(Samatha, 止)와 위빠사나(Vipassana, 觀)로 대표된다. 사마타는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키는 수행으로 위빠사나 수행의 준비이자 전제조건이다.
‘淸淨道論, Visuddhimgga’에는 사마타 수행 주제로 40가지가 열거되어 있으며, 수행자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수행 주제들이 제시된다. 위빠사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으로 ‘大念處經’의 수행법을 근거로 하고 있다. ‘대념처경’에는 사념처, 즉 마음챙김(sati)의 대상으로 몸·느낌·마음·법(身受心法)의 네 가지를 반복해서 관찰하는 방법을 설하고 있다.
태국불교 수행에는 入出息念에 기초를 둔 수행법과 사념처에 바탕을 둔 순수 위빠사나 수행 전통, 수정을 사용하는 담마까야(Dhammakaya, 法身) 명상법 등이 있다.
이번 태국불교문화연수에서 수행했던 담마까야 명상법은 Luan Pu Wat Paknam 스님이 부처님 반열반 이후 500년 동안 사라져 있던 명상법을 재발견한 것이다. 담마까야 수행법의 특색은 투명한 수정을 정신 집중의 대상으로 사용하는데 있다.
수정 구슬을 몸의 중심(배꼽 위 두 손가락 두께 만큼 위에 위치, 단전과 다름)에 띠워 집중하는 것이다. 수정구슬에 집중하며 ‘Samma Arahan’을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염하는데, 이 말은 명상하는 동안 마음이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진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여기에서 Samma는 ‘올바른 것’을, Arahan은 ‘깨달음의 성취, 깨달음을 성취한 자’를 의미한다. 담마까야 명상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몸과 마음을 ‘sabai, sabai(편안하게, 안락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좌복 위에서 참선을 한다. 그러나 담마까야 명상은 좌식의자처럼 등받이가 갖춰진 방석 위에서, 혹은 의자(팔걸이가 없는)에 앉아 명상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태국연수에서 수행했던 담마까야(法身) 명상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자리에 편안히 앉아 손을 무릎위에 놓고, 왼손 손바닥 위에 오른손 손바닥을 올려놓는다.(오른손 검지가 왼손 엄지에 맞닿도록 ) ② 머리에서 이마, 뺨, 귀, 입 등 얼굴과 어깨, 팔, 다리, 발 등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몸 전체를 점검하여 경직되지 않은 상태로 편안하게 한다. ③ 눈에 힘을 주지 않고 가볍게 감는다. ④ 내가 푸른 들판, 높은 산봉우리, 혹 바닷가 등 편안하고 자유롭다고 여기는 장소에 앉아 있다는 상상을 한다. ⑤ 숨을 몸의 정중앙까지 들이쉬고, 천천히 내쉰다. ⑥ 몸의 정중앙에 수정 구슬을 띠워 편안하게 바라본다(해나 달 등 圓像이나 부처님, 혹은 경우에 따라 창공을 둥실 떠다니는 비눗방울을 그려보아도 좋다.) ⑦ 명상 중 ‘Samma Arahan’을 암송이기도 한다.
자유명상 시간은 45분 정도였고, 스님과 함께 했던 명상은 1시간 10분 내외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대개 50분 참선, 10분 경행을 하는 것과 비교하여 담마까야의 명상은 좀 길다고 느껴졌다. 수행을 지도했던 파수라 스님은 훈련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비교적 긴 명상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명상에 적절한 길이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여 질문하자, 스님은 수정구슬과 일체화되는 명상상태에 들어가는 것이 핵심이며, 명상시간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참선할 때 호흡에 집중하며, ‘What am I?(이 무엇인가?)'를 되뇌는 것에 습관이 된 나로서는 처음에 수정 구슬을 떠올리는 것이 낯설었지만, 이내 쉽게 적응이 되었던 것 같다. 요즘도 앉아 있거나 누워 있을 때 자연스레 몸 중앙에 수정구슬이 떠올려지기도 한다.
* 덧붙이며
담마까야 연수에서 규칙 중 하나가 오후 불식이었다. 아침(7시 15분)과 점심(11시)에 식사를 했고, 1시 이후에는 쥬스 등 액체 이외에는 금식이었다. 첫날은 배가 좀 고팠던 것 같다. 하지만 둘째 날부터는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오후부터 밤까지 먹는 일에서 해방? 되니 시간도 마음도 여유가 생겨났던 것 같다. 특히 몸의 컨디션이 좋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지금도 오후불식을 하고 있는데, 상당히 추천할 만하다. 글-국제포교사 김지영, 사진-국제포교사 정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