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이별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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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심행 작성일2016.04.27 조회1,680회 댓글0건본문
‘타이난 지진’을 대하는 대만인들의 태도 그리고 세월호
아침공양을 마치고 대중스님들과 함께 버스 한대로 타이난 지진희생자 추모 초재가 거행되는 곳으로 출발했다. 아침 8시지만 사람들이 계속 모이고 있었고, 사진에서 보듯 왼쪽은 출가자, 오른쪽은 유가족들로 자리를 잡고 아침 9시부터 저녁 4시 30분까지 의식이 거행됐다.
빈소가 마련된 곳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장례식장이고 초재의식은 중화불교회에서 주관했다. 영유아를 포함한 남녀노소 할 것이 다양한 연령대의 희생자 영정이 약 40개 정도 놓인 단 앞에는 꽃과 음식 등이 올려져있고, 중앙에는 부처님을 모셨다.
이곳에 있는 동안 나는 줄곧 세월호 참사의 현장인 팽목항에 있었을 때와 그 이후 우리나라의 국가권력과 사회의 일부세력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향해 쏟아내던 잔인한 일들을 대조적으로 느끼면서 솟구치는 슬픔을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진짜로 대만이 부러웠다. 왜 부러웠는지에 대해서 다소 길지만 적어보고자 한다.
1. 인간불교의 힘
1) 중화불교회와 각 현의 불교회
대만은 각 현(우리나라의 도에 해당)마다 자치적인 불교회가 있다. 예를 들면 타이빼이 불교회, 타이난 불교회, 지야이 불교회 등등을 말한다. 불교회의 상위 조직이 중화불교회인 것이다. 재난사고가 일어나면 각 현의 불교회와 중화불교회가 협력해서 위령제나 기도법회 등을 주관하는데 강제적인 동원이 아니라 스님들의 아주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동참이 특징적이다. 이래서 대만불교가 인간불교라고 하는 것이리라 믿는다.
2) 자재공덕회
오늘 초재의 자리에도 어김없이 유니폼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봉사자들은 자재공덕회로서, 남녀 구분할 것 없이 일사분란하게 일처리를 하고 있었다. 현장에 있는 모든 스님과 유가족들 그리고 기자들의 음식들과 의식 때 독송할 지장경을 준비하여 일일이 나누어 줬다. 더 나아가 화장실 앞에서 스님들의 가사를 받아 주는 일까지 포함하여 행사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아주 신속하고 조용히 잘 처리했다. 모든 음식은 보시에 의해 자발적으로 제공되는 것이라고 한다.
3) 유가족들보다 스님들이 더 오래 자리를 지킨다.
의식이 시작할 때 다 채워져 있던 좌석들이 마칠 즘인 4시경에 돌아보니 유가족들은 듬성듬성 빈 자리가 많이 보이는데, 출가자 좌석은 오전과 변함없이 빽빽하게 차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런 것들이 바로 대만불교가 보여주는 인간불교 혹은 발보리심의 반증임이 아닐까 싶었다.
4) 승가 외호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이행하는 불자들
지계도량인 우리 의덕사가 단체로는 유일하게 오후 불식계를 지켜야 하여 정오가 넘기 전에 다른 스님들은 의식을 진행하더라도 의덕사 40여 명의 스님들만은 미리 자리를 떠 별도로 제공된 장소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런 자리에서 굳이 별스럽게 저리 해야만 하는가라는 식의 못마땅한 눈빛을 예상했었는데, 도착장소엔 정갈하게 차려진 도시락을 준비한 자재공덕회 봉사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불자인지라 그저 ‘다름’을 인정하고, 최대한 계체를 잘 지킬 수 있도록 외호하는 자세가 몸에서 자연스럽게 베어 나왔다. 不受食戒 때문에 手受法을 알려 드렸더니 조용히 작법을 도와주는 모습에서 나는 ‘정말 정진을 잘 해서 이 모든 분들에게 유익한 수행자가 되어야겠구나. 잘 살아야겠구나’ 하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점심 공양 때도 연신 나를 감동케 하는 일이 있었다.
2. 지도자와 행정 관료들
신문 기사에도 나왔지만 공식의식이 시작하기 전 차이잉원 대만 총통 당선자는 현직 총통이 움직이기 전에 미리 와서 분향하고 참배를 했고, 공손히 합장인사를 하면서 조용히 나갔다. 뒤이어 공식적으로 의식이 진행되자 현 총통이 분향하고 참배를 했다.
총통은 물론 함께 온 소수의 행정 관료들은 검소해서 얼핏 보면 그냥 유가족 같았고, 지극히 소박한 셔츠 차림의 경호원 5-6명들, 중간에 의식을 멈출 정도로 긴 시간을 유족들 사이로 오가면서 위로를 나누던 총통은 돌아갈 때도 집전하는 스님들께 공손히 절을 하고, 합장을 하며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하다는 눈빛을 전하면서 떠나갔다.
나는 이 부분에서 팽목항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팽목항에서 나올 때 갑자기 등장한 검은 색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무전기를 들고 별스럽게 사람들을 통제하고 차량을 통제하고 하던 그 때, 나중에 알았다. 대통령이 오는 것이었음을.그 이후의 사건은 언론에서 보도된 대로니 더 보태고 싶은 것은 없다.
다만 차이잉원 당선자가 한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그녀는 타이난 지진이 일어난 이후 여러 곳을 직접 방문하면서 희생자와 실종자 유가족들을 만나고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가지 않는 곳이 딱 한 군데 있다는데 그곳은 바로 사고가 일어난 현장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사고 현장에 그녀가 등장하면 구조작업에 쏟아야 할 인력과 시간과 관심이 분산될까봐 염려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3. 잘 이별할 수 있도록...
오늘 장례식장에 가서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법회 및 지장경 독경을 하면서 종합적으로 느낀 것은 “유가족들이 이별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 라는 것. 불의의 사건 사고로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은 정말 당해보지 않으면 모를 고통이고 아픔이다. 어쩔 수 없이 이별해야 하니까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은 바로 ‘공감’의 힘이다. 곳곳에서 온 2천여 명의 스님들은 온 정성을 다해 희생자들을 위해 독경을 했고, 희생자와 직접적 관계에 있지 않은 수많은 불자들이 슬픔을 함께 공감하면서 자원봉사를 하며, 지도자와 행정관료들은 진솔한 자세로 위로를 건네는 이런 과정은 슬픔의 한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는 그래도 견딜 수 있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됐다.
4. 나의 조국 대한민국...
현장에 있어 보면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이 일은 사람이라면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인데 우리는 왜 그렇지 못했을까? 어쩌다가 보통사람인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잖냐. 경제를 생각해야지’라는 그런 보수언론의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전달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을까?
인간이 가진 ‘슬픔을 함께 나누는 연대의 힘, 공감의 힘’을 잘라버리고 끊어 내버리기의 위한 여론의 힘에 의한 사회가 되어버린 내 조국, 아직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가족을 잃어버린 슬픔 위에다 갖가지 잔인한 말들과 모함으로 이중 삼중 다중의 고통을 주고 있는 현재를 생각하면서 오늘 나는 한없이 슬펐다. 그래서인지 “조국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함께 기도할께요, 스님!”이라는 스님들의 쪽지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출처 : 정원스님의 카카오스토리 https://story.kakao.com/_gVVlG/JZTYJsfEv6A
대만 기사 링크 http://m.ltn.com.tw/news/life/breakingnews/1600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