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전 캄보디아 쁘레이벵 주(州)의 쁘레이끄랑 마을. 야자수 잎으로 지붕을 얹은 옹색한 집에서 수인성 질병을 앓고 있는 마흐엥(35)씨를 만났다. 그의 몸은 부서질 듯 앙상했다. 깡마른 다리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4년 전 같은 병으로 부인을 잃고 10살 난 딸과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설사가 가라앉지 않는다”며 “병원 갈 차비도 치료비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고통에서 벗어나길 부처님께 매일 기도한다”며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지난 8일 쁘레이끄랑 마을에서 만난 마흐엥 씨. 수인성 질병에 걸렸지만 병원 갈 형편이 안 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4년 전 같은 병으로 부인을 잃고 10살 난 딸과 함께 살고 있다. |
캄보디아 오지 쁘레이벵 주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
화장실없어 수인성 질병에 노출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차로 4시간 거리인 이 마을에는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질병에 쉽게 노출돼 있었다. 마흐엥 씨 또한 배설물 등으로 오염된 물을 먹고 건강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병을 얻었다. 대부분 논농사를 지으며 가난하게 살고 있는 이들에게 병원치료는 그림의 떡이다.
건기 때는 발병율이 더 높다. 지난해부터 쁘레이벵 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NGO ‘위드아시아’의 전근수 캄보디아 지부장은 “대부분 들판이나 노천에서 대소변을 해결해 위생상태가 심각하다”며 “특히 우기에 인분이 비에 섞이고 우물까지 스며들어 그 물을 마신 사람들은 콜레라와 장염, 피부병과 고열 등 각종 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썩은 물을 마시는 상황은 아이들의 건강과 생명 뿐 아니라 희망마저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 주민 200여 명은 지붕 처마 밑에 물 항아리를 두고 빗물을 받아먹거나 1~2시간 떨어진 곳에 있는 물을 길어다 먹는다. 빗물을 식수로 쓸 수 있는 때는 6월부터 10월까지 우기뿐이다. 11월부터 이듬해 5월께까지 이어지는 건기에는 빗물도 마른다.
뿐만 아니라 5달러씩이나 하는 항아리를 마련할 형편이 못 되는 주민들은 질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건기에는 우기 내 웅덩이에 고인 물이나 논두렁 물을 떠먹으며 버티는 주민들도 더러 있다. 웅덩이에서 목욕, 수영, 빨래 등을 하면서 병에 걸리기도 한다고 전 지부장이 설명했다.
위드아시아가 화장실 짓기 사업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캄보디아 정부도 위생에 대한 관심이 높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는 지난해 11월 개인위생을 철저히 지켜달라는 당부를 담은 공문을 전 지역으로 보냈고, 공공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위생을 재차 강조했다. 위드아시아는 질병 발생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화장실에 있다고 보고 ‘한마을 공동 화장실 짓기’사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지부장 파견해
공부방 열고 환경개선 앞장
200여명 어린이 학구열 대단
현재까지 쁘레이벵주 깜뽕쓰로빠이군 내 10개 면 가운데 4곳에 20개의 공동화장실을 건립했다. 삐쯔로왓, 앙끄롱, 씨삐여이, 낙뽀으, 썸무라옹, 따미에, 뿌레이끄랑, 끄로읏 마을 등에 시설을 세웠다. 앞으로 한 마을당 한 개 건립을 목표로 총 108개 건립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마을 주민들에게도 이번 사업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비용을 후원하면 자발적으로 공사현장에 참여하는 등 노력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완공된 화장실은 이장의 책임 하에 주민들이 돌아가며 관리하고 있다.
8일 삐쯔로왓 마을에서 어린이들이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 |
같은날 삐쯔로왓 마을 화장실 준공식 현장에서 만난 짠드란 깜뽕쓰로빠이군 군수는 “멀리 한국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시설을 마련해 줘 감사하다”며 “환경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장 둠사보 씨도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며 “철저히 관리해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노력봉사
“한국의 따뜻한 마음 느껴져”
한편 위드아시아는 이번 활동 기간 동안 어린이 공부방을 찾아 학용품을 나눠주고 수업 현장도 지켜봤다.
지난 7일 공부방에서 만난 100여 명의 어린이들은 합장을 하고 한국말로 인사해 큰 관심을 끌었다. 모국어를 말하는 것처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를 유창하게 소화해 냈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쁘레이끄랑 마을 공부방은 뗀사멧 씨가 집을 통째로 내줘 마련할 수 있었다. 시설은 따로 짓지 않았다. 위드아시아는 마당 한 곳에 책걸상을 설치해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있다.
7일 쁘레이끄랑 마을 공부방에서 어린이들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
이곳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끄로읏 마을 공부방은 인근에 시설이 마련됐다는 소식을 들은 주민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세워졌다. 100여 명의 어린이는 주택의 방 한켠 땅바닥에서 읽고 쓰기를 하지만 배움의 열기만은 대단했다. 위드아시아는 쁘레이벵 고등학교를 졸업한 현지인 여교사 4명의 월급을 매달 지원하고 있다.
공부방 교사 치아 리타 씨는 “어린이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교육”이라며 “더욱 많은 공부방과 학교를 만들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도시에서 공부하고 싶어도 환경이 어려워 꿈을 접어야 하는 아이들이 다수”라며 “교육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위드아시아를 적극 돕겠다”고 덧붙였다.
구호활동에 함께 한 참가자들도 위드아시아 사업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조용현 부산늘푸른장학회장은 “국외봉사와 장학사업 등을 위해 지난해 단체를 결성한 이후 구체적인 사업 방향을 설정하고자 참여하게 됐다”며 “돌아가 회원들에게 사업을 소개해 공부방 등의 사업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위드아시아는 창립 이후 국내와 제3세계 빈곤 국가를 대상으로 이웃사랑과 봉사정신을 실천해왔다. 1999년 중국 조선족 중.고.대학생의 장학금 지급을 계기로 활동을 시작한 단체는 태국 북부 치앙마이 산악 지역 라후마을 문수초등학교, 인도 유피주 에타하 간즈둔드와르 마을 타타가타 초등학교, 인도 산티니케탄 인근 산탈리 마을에 중학교를 설립했다. 올해 산티니케탄에 활동가를 파견해 학교 관리 지원에 힘쓸 예정이다. 후원문의 (02)3444-8007
[불교신문 2784호/ 1월18일자]
■ 윤종술 상임대표.딸 수현 양 인터뷰
우리애 걱정뿐이었는데 지구촌어린이도 내 자식
“항상 우리아이 걱정뿐이었어요. 지구촌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온 것 같네요.”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상임대표(49)는 지난 8일 쁘레이끄랑 마을에서의 구호활동을 마치고 이같이 밝혔다. 윤 대표는 자폐증 아들을 둔 아버지이다.
윤 대표는 단체차원에서 후원한 총 13개의 공동화장실 현황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지원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딸 수현(19)양과 함께 참가했다. 이번에도 전국 지부, 지회들과 힘을 모아 의류 1000점을 비롯해 가방, 신발, 선글라스 등을 갖고 와 마을에 후원했다.
“이곳 어린이들은 자라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민간대사가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해외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듯이 이제는 우리가 받은 것을 돌려줘야 합니다. 마을들과 자매 결연을 맺어 공부방을 열어주고 싶습니다.”
미술을 공부하는 윤수현 양도 공부방에서 어린이들과 그림을 그리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이곳 어린이들은 환경 탓에 음악과 미술을 배울 수 없다.
특히 마을에서 하루를 보낸 후 현지 주민 집에서 잠을 청한 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오지에 담요 보내기 캠페인을 진행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만 해도 더운 나라에 ‘왠 담요냐’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대나무와 코코넛 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움막집 같은 곳에서 밤새 오들오들 떨면서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게 부끄러웠어요. 자립하면 제가 가진 것을 나누며 살고 싶어요.”
[불교신문 2784호/ 1월18일자]
■ 비영리 NGO ‘위드아시아’ 이사장 지원스님
눈 조금 크게 뜨면 모두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과제
“생각했던 것 보다 환경이 열악하다. 우기엔 물이 새고 겨울엔 바람이 드는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니 너무 안타깝다. 진학은 꿈도 못 꾸던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공부방을 열고, 환경개선사업에도 힘쓰겠다.”
지난 9일 캄보디아 쁘레이끄랑 마을에서 화장실 완공식과 건립현장 답사를 마친 위드아시아 대표 지원스님은 이같은 소감을 밝혔다. 지원스님은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해외구호사업이 중요하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눈을 조금만 크게 뜨면 세계 문제가 다 우리, 내가 끌어안아야 할 시대적 과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며 활동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캄보디아 쁘레이벵 주(州) 쁘레이끄랑 마을은 가장 빈곤한 지역의 하나로 3000여 명의 주민 대부분이 절대빈곤층이다.
인근 5km 이내 학교가 없어 아이들은 일찌감치 배움의 꿈을 접어야 하는 오지 중의 오지다. 진입구에서 이 마을 일대가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여서 접근조차 쉽지 않다. 베트남과 인접해 있으며 라오스 소수 민족들도 살고 있다. 화장실이 없어 위생상태가 심각해 주민들은 각종 수인성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이사장 지원스님은 화장실 짓기 사업과 더불어 어린이 공부방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현재 20개의 화장실을 완공했으며, 쁘레이벵 주 깜뽕쓰로빠이군 쁘레이끄랑 마을과 끄로읏마을 두 곳에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100여 명의 어린이가 캄보디아어와 한국어, 영어 등을 공부하고 있다.
지난 6일 한국을 떠나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한 스님은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30여 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전통가옥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지원스님은 “단순히 설립에 그치지 않고 필요한 물품 기부, 현장 방문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후원할 방침”이라며 “우선 빠른 시일 내 공부방을 10개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학교를 신축하기 보다는 타 단체에서 설립했지만 관리 부실로 방치된 시설을 개보수할 계획도 갖고 있다.
뜻있는 단체들과의 연대도 적극 모색하겠다고 강조했다. 해외구호활동을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망설이는 개인과 단체를 모집해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할 방침이다. 이번 행사에도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주식회사 차바이오F&C, 부산 늘푸른장학회 등과 동행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났지만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인도의 초대 법무장관을 지낸 국민영웅 암베드카르와 같은 훌륭한 인물로 자랐으면 좋겠다”며 “가난하고 소외된 나라와 함께 한다면 한국 불교의 미래는 밝다”고 말했다.
지원스님은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을 역임하며 금강산 신계사 복원과 공익법인 아름다운동행을 출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불교신문 2784호/ 1월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