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일화 24호] 카자흐스탄의 불교 유적지와 초원로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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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3.04.12 조회2,152회 댓글0건본문
내가 있는 우즈베키스탄은 실크로드의 중간 지점으로 인도와 중국 그리고 시리아 로마를 연결하는 삼각지인 아주 중요한 곳이다. 이번에 기회가 되어 중국의 북경-서안-우루무치-카자흐스탄 알마티-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를 돌아볼 수 있었는데 특별히 카자흐스탄 알마티 여행의 기억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알마티는 “사과의 아버지”라는 의미가 있으며 약 3만 명이 넘는 고려인들이 사는 곳으로 과거 실크로드의 북방 길 통로였기 때문에 인근에 적잖은 불교 유적지가 있다. 알마티에서 서북쪽으로 60km 떨어진 일리 강변에는 7~8세기의 불교 유적지가 있는데 강변의 암벽에 부처님과 보살님 등을 새겼고 티베트어로 이들 불보살님의 명호와 간략한 경구가 새겨져 있었다. 알마티에서 동북쪽으로 약 30km 가면 옛 불교 유적지가 있다고 하여 찾아갔더니 마을 사람들 말이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약간의 유물을 발굴하긴 하였으나 이 지역이 1900년대 초반 큰 지진으로 지형이 바뀌어 유적지가 소멸한 것 아닌가 했다고 한다. 풍수적으로 불교 사원이 있었다면 배산임수에 캐러밴의 행로를 고려해 제일 적합한 지역을 찾아 그곳에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불교 사찰을 만들기로 마음먹고 그곳 불자들에게 공표했다.
중국의 불교 전파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한나라 때 대월지에서 백마의 불상과 경을 가지고 와 낙양성에 모시고 “백마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대월지는 시기상으로 아프가니스탄 힌두쿠시 산맥 이북과 우즈베키스탄 남부를 영토로 두었던 시기이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많은 불교 유물이 발굴되었거나 발굴하고 있다. 특히 현장스님이 “대당서역기”에 쓴 거대한 대탑과 ‘철문’은 현존하고 있고, 불탑의 근거가 되는 유적도 복원되었다. 혜초스님도 인도를 돌아보고 가시는 길에 약 4년 동안 이 지역에 머무셨다는 기록이 “왕오천축국전”에 있다. 이 지역은 그동안 소련이 지배하고 있어 서방 학자들에게 공개가 안 되었다가 소련이 붕괴하면서 개방되어 고고학적 발굴을 토대로 불교 학술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기 시작하고 있어 앞으로 20~30년이 지나면 불교 역사, 특히 대승불교의 역사에 큰 반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는 가장 큰 잘못은 이 실크로드 외에 더 좋은 교역로가 그 북쪽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고구려 시베리아를 거쳐 중앙아시아를 통하여 인도와 로마로 가는 길인 “초원의 길”이다. 이 길을 통하여 중국 쿠차 지역의 미라 유적지와 선선국 등에서 발굴된 코카서스 인종의 미라가 왕래하였고 고구려의 담비가죽이 로마에 고가품으로 수출되었다. 이 길은 고구려에서 유럽까지 인간이 살 수 있는 초원으로 덮여 있었다. 이 길에서 중국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4세기 로마를 점령했던 훈의 아틸라도 흉노 때문에 이 초원로를 통하여 유럽으로 로마로 확장하여 갔고 신라의 황남대총 황금보검과 독수리 머리 황금조각품, 사슴, 유리 등의 유물들도 이 초원로를 통하여 오갔던 것이다. 이렇게 중국을 배제한 채 고구려와 신라까지도 문명 교류를 이루어 온 길이기에 우리는 동서 교류사를 연구할 때 실크로드와는 별개로 이 “초원로”를 반드시 연구해야 한다. 아울러 고구려 불교를 연구할 때도 이 초원로에 대한 고찰이 없다면 반쪽짜리 연구밖에 안 될 것이다.
이번 조사여행은 충분한 사전 준비 없는 단순한 여행에 가까웠지만 내가 불교와 한국의 역사를 배우면서, 혹은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면서 갖게 된 의문점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고 정리하는 데는 큰 의미가 있었다. 차후 좀 더 준비된 조사를 한다면 왜곡되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불교를 배우고 부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지켜주신 역대 선배 스님들과 불자님들의 은혜에 감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감사합니다.
글 ― 우즈베키스탄, 조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