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수행자 영봉스님, '재네팔한인회장' 추대(불교신문 1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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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3.02.27 조회1,492회 댓글0건본문
26년째 네팔을 찾고 있는 영봉스님이 이번에 제6대 재네팔한인회장으로 추대됐다. |
수행처를 히말라야로 삼고 26년째 네팔을 찾고 있는 영봉스님이 제6대 재네팔한인회장으로 추대돼 화제다. 2월20일 서울 낙원동의 한 찻집에서 만난 스님은 “앞으로 한인회는 친목활동에 그치지 않고 보건 의료 법무 등 모든 분야에서 히말라야로 가는 다리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영봉스님은 지난해 12월8일 회장으로 취임했다. 스님은 안나푸르나 4봉을 오른 산악인으로서의 경험 뿐 아니라 현지인 대상 한국어 학당을 열어 다방면에서 폭넓은 인맥과 경험을 갖추고 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스님이 한인회장을 맡은 사례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님은 회장선거에 나선 계기를 묻는 질문에 “불교발상지인 네팔에서 정작 불교인들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현지에서 선교를 펼치는 목사는 200여명에 달하지만 한인회에서 스님이나 불자의 활동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5대 회장은 목사가 맡아 2년간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영봉스님은 “종정스님이나 종단을 대표한 분들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스님이 한인회장으로 환영을 하면 좋지 않겠냐”며 “네팔을 찾는 모든 이들이 한인회의 문을 두들길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조직 체계를 바로 세우고 대외적인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가겠다”고 밝혔다. 오는 25일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열리는 제 18대 대통령 취임식 행사에 참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봉스님은 특히 교민 뿐 아니라 네팔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겼을 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한인회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현재 네팔에 살고 있는 교민은 약 700여명이다. 공관직원, 사업가, 유학생 등 다양한 계층이 생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6년에 직항노선을 개통하면서 연간 10만명이 왕래하는 곳이 됐다. 때문에 한국교민회의 역할 비중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영봉스님은 “매년 각종 산악사고로 제때 도움을 받지 못해 아까운 목숨을 잃는 일이 벌이지고 있다”며 “대사관은 행정기관이다 보니 사무적으로만 처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화나 의료, 법률, 비자 등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돕겠다”고 말했다. 스님은 이를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 4명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스님은 “거대한 산 히말라야를 오르며 이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웃들에게 돌려줄 때가 됐다고 결심했다”며 “종교와 인종을 떠나 타국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주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1984년 비구계를 받고 선방에서 좌선을 하던 스님은 탁발과 만행을 통해 ‘수행자라고 해서 가만히 앉아 얻어먹을 순 없다’는 화두를 얻는다. 이후 선방을 나와 히말라야를 비롯해 인도, 러시아, 일본 등 세계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행선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포터의 대를 이어 아들이 포터로 나온 걸 보고, 가난과 무지의 삶속에 포터로 살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교육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영봉스님은 카트만두 시내에 세종학당을 세우고 현재까지 1700여명의 교육생을 배출했다. 2700m 산속 오지 파쁘레 마을에 세운 파쁘레 초등학교와 태국 미얀마 난민촌 불교중학교, 매솟 새생명초등학교는 스님의 새로운 수행처가 됐다. 스님이 직접 교사를 임용하고, 후원금으로 교사 월급부터 모든 학교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최근 세종학당 졸업자 가운데 한국으로 취업한 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후원회를 결성해 후배들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줬다. 단체 이름은 ‘301 운동’. 30일 가운데 하루 일한 수입을 후원하자는 취지에서 이같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영봉스님은 “학당에서 교육을 받은 청년이 한국에서 돈을 벌어와 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며 “비록 몸은 고되지만 평화로운 기쁨으로 충만하다”고 말했다.
후원문의: 히말라야의 꿈(cafe.daum.net/dreamofhimalaya, 이메일: towoo5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