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행으로 필리핀의 슬픔 달래다”(불교신문 13/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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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그루 작성일2013.11.27 조회1,503회 댓글0건본문
태풍 피해는 조계종 긴급구호봉사대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참혹했다. 하이옌은 모든 것을 집어 삼켰다. 가족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던 보금자리는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공부하며 미래의 꿈을 키우던 학교며, 땀 흘리며 일하던 공장, 여가를 즐기던 공원까지 어느 하나 성한 것이 없었다. 곳곳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고, 퀴퀴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전신주도 나무들도 피해를 비껴가지 못했다.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인형도, 주인을 잃어버린 신발도 쓰레기 더미와 함께 거리에 나뒹굴었다. ‘Please, help us(우리를 도와 주세요)’, ‘We need food(식량이 필요합니다)’라는 문구가 피해를 짐작하게 했다. 태풍 피해를 가장 심하게 입은 곳, 대한민국 공군 수송기를 타고 지난 11월21일 긴급구호봉사대가 접한 필리핀 타클로반의 첫인상이었다.
타클로반에 도착한 조계종 긴급재난구호봉사대는 숨 돌릴 틈도 없이 구호 예정지인 톨로사로 이동했다. 한시라도 빨리 피해 현황을 살피고 도움이 필요한 주민들에게 만나 아픔을 위로하고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톨로사는 하이옌이 강타한 타클로반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4000가구 1만7000여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 이동하는 내내 접한 풍경은 처참했다. 대부분의 집들이 파괴됐으며, 수도와 전기 공급도 차단된 상황이다. 해안가에 위치해 있어 태풍에 이어 해일까지 마을을 덮쳤다. 피해는 심했지만 구호의 손길은 요원했다. 언론의 관심과 NGO들의 구호활동이 타클로반에 집중돼있어 사실상 구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긴급구호봉사대가 찾은 톨로사 내 대부분의 집들은 간신히 형체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태풍에 이어 계속해서 내리는 비로 복구 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틈틈이 흙 속에 묻힌 집기들을 챙기고 쓰레기를 치우는 정도였다. 이멜다 노비오(52세) 씨는 “식량과 물이 부족하다. 가족들과 함께 안전하게 쉴 곳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슬픔에 봉사대는 주민들의 손을 잡으며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했다.
톨로사를 둘러본 봉사대는 다시 타클로반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이옌의 위력을 눈으로 실감했다. 인구 밀집지역인 만큼 피해도 심했다. 하지만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직후의 처참함은 대부분 정리된 모습이었다. 도로도 다시 제 구실을 하기 시작했다. “We are still alive(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다)”. 몇몇 주민들이 봉사대를 향해 소리쳤다. 기약없는 피해 복구에 현실은 절망스럽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메시지였다. 태풍은 많은 것들 빼앗아 갔지만 사람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마주치는 주민들은 봉사대를 향해 웃음으로 화답했다. 곳곳에서 복구의 손길이 분주했다.
다음날인 11월22일 긴급구호봉사대의 본격적인 구호물품 지원이 이뤄졌다. 물품 분배에 앞서 봉사대는 예불을 드리며 활동을 시작했다. 피해 주민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이날 봉사대가 톨로사 주민들에게 전달한 구호물품은 쌀과 라면, 물, 통조림 등 생필품 9개 품목이다. 필요한 물품은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구입해 피해지역으로 공수했다. 안전에 유의하며 배로, 육로로 장장 30시간에 걸쳐 톨로사에 도착했다. 물품구입과 배송은 필리핀에 파견된 불교계 어린이구호단체 굿월드 자선은행 활동가들이 맡았다. 김규환 굿월드 자선은행 사무국장은 “불교계 어린이구호단체로서 종단에서 필리핀 긴급구호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 이번 긴급구호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긴급구호봉사대는 똘로사 내 지역 조직인 바랑가이(한국 행정조직 면 개념)를 통해 돈나브리히다, 텔레그라포, 포브라시온 등 총 9곳에 물품을 전달했다. 전달된 구호품은 바랑가이를 통해 똘로사 내 4000가구 1만7000여 명의 주민들에게 분배됐다. 4000가구 대부분이 구호의 혜택을 받게 됐다. 종일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봉사대는 피해 주민들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긴급구호키트에 포함된 품목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물품을 나르며 구슬땀을 흘렸다. 봉사대 단장 혜만스님도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물품 전달에 함께 했다. 지역 주민들도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에 동참해 일손을 거들었다. 구호키트가 분배되는 동안 주민들도 함께 자리를 지키며 구호단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바랑가이 대표 어빈 칼다(50세) 씨는 “하이옌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태풍피해를 돕기 위해 한국에서 오신 여러분의 도움에 감사하다”며 “특히 쌀과 물 등 구호품은 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주민들도 한마음으로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윈 오카나 똘로사군 군수도 “똘로사를 위해 큰 도움을 주셔서 감사하다”며 한국 불교계에 거듭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단장 혜만스님은 태풍 피해와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뜻을 전한 뒤 “재해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밝게 웃으며 생활하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니 종단에서 발빠르게 구호활동에 나서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하루 빨리 피해를 극복하길 바란다”고 지역 주민들을 위로했다.
11월23일에는 추가로 물품 지원이 진행됐다. 구호 지역인 사마르섬 기안 지역, 타크로반에서 차로 4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는 지역이다. 1만3500가구 4만7087명이 생활하는 기안은 타클로반 못지않게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사망자 101명에 부상자도 3417명에 달하고 있다. 생사가 불분명한 이들도 16명으로 집계됐다. 복구가 진행될수록 피해는 늘어날 전망이다. 듀비트 (45세) 씨는 “하이옌으로 모든게 파괴됐다”며 “각국에서 도움을 주고 있지만 복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도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곳 역시 거리상의 이유로 구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국경없는의사회, 옥스팜 등 국제적인 규모의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불교계 단체는 긴급구호봉사대와 JTS. 봉사대가 기안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봉사대는 톨로사와 마찬가지로 기안에 4000가구를 위한 구호물품을 전달했다. 긴급구호봉사대의 활동 소식이 전해지자 현지 언론 PTV4에서도 단장 혜만스님을 인터뷰하며 관심을 나타냈다. 혜만스님은 조계종에 대한 소개와 봉사대의 지원 내역을 소개하며 현지에 봉사대의 활동을 알렸다. “빠른 복구가 이뤄지길 바라며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길 기원한다”는 위로도 잊지 않았다
신 곤잘레스 기안 군수는 “한국에서 이곳까지 방문해 도와주셔서 감사하다. 여러분이 지원한 식량과 구호품은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각국 정부와 NGO의 도움에 재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더 나은 마을 만들기 위해 많은 국제구호단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번 긴급구호봉사대의 필리핀 태풍 피해 지원은 조계종 긴급구호의 노하우가 집약된 결과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동안 종단은 인도네시아 쓰나미, 미얀마 싸이클론, 아이티 지진, 일본 원전사고, 태국 홍수피해 지원 등 다양한 긴급구호를 실시하며 풍부한 경험을 쌓아왔다. 또 공익기부재단 아름다운동행에서 긴급구호를 위한 기금을 조성해 재난 발생 이후 모금캠페인을 전개했던 과거와 달리 신속하게 지원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다양한 재난 구호 활동을 주관하며 쌓아온 경험은 종단의 긴급구호를 한층 발전시킨 계기가 됐다.
김동훈 사회복지재단 나눔사업부문 부장은 “이번 필리핀 구호활동은 피해지역이 광범위하고 피해도 극심한 상황이었다. 발빠르게 봉사대를 파견하고 조사와 물품수집, 지원 등 모든 과정을 종단에서 나서서 진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필리핀 구호를 통해 종단의 긴급구호를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